한 가지 잉크로 이면지에 인쇄하고, 오프라인 제작물 대신 가능한 대로 온라인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기후미술관이 열렸다. 기후변화로 죽어가는 ‘오이코스’ 우리의 집과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40%를 배출하며 짓고 부수는 집, 그리고 벌과 새, 나비의 생존을 돕는 집이 주제다.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 마주하는 건 고사목이다. 국립공원에서 자란 전나무인데 기후 스트레스로 고사돼 옮겨진 것이다. 전나무 같은 침엽수는 북반구의 온대지역에서 툰드라까지 분포하는데 겨울과 봄의 이상 건조, 여름의 폭염, 강한 태풍 등 급격한 기후변화로 고사 중이다. 한라산 상공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면, 구상나무 군락지도 하얗게 죽어가고 있다.
우리의 집 지구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상황이 좋지 않은지도 모른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와 폭염이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고, 또 그 같은 현상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먼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땅과 그 안에 있는 만물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모든 것이 다 여호와의 것”(시편 24:1)임을 안다. 우리는 정의롭게 행동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돌보기는커녕 훼손하며 사람들을 더 깊은 빈곤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이 기후 위기에 반응해야 하는 건 이 시대를 살며 믿음을 실천하는 데 있어 우선적이고 핵심적인 기도이자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교회라면 하나님이 직접 창조한 피조물 전체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걸 증언하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두고 반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문제는 ‘점점 더 나빠지는 기후 위기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하고, 이들과 함께 기도하며 함께 행동해야 한다. 오는 11월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니, 이때를 목표로 세계 지도자들이 위기의 심각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확실하고도 진전된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코로나 상황 중이지만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소모임을 만들어 기도하고, 교회 내 환경팀이 있다면 협력해 교회 전체가 기후예배를 드리며 기후 비상 선언을 이어가는 방식은 어떨까 싶다. 선언이 구체적 행동계획을 담지 않고 있더라도, 위기의 시급성을 인정하고 침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공개적으로 진술하면 된다. 더 나아가 이웃교회는 물론 지역사회와 협력한다면 탄소 배출량을 상당량 줄여 지구 평균 기온상승 폭을 1.5~2도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별다른 행동 없이 우리가 지금처럼 탄소를 배출한다면, 지구는 예측대로 더는 지속 가능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순간도 탄소 배출 없이 살 순 없지만, 어떻게든 줄여야 하지만 쉽진 않다. 매일 지구에 남기는 탄소 발자국을 파악한다면 가능할까. 1인당 탄소 배출량이 세계 4위인 우리가 지금부터 10년 안에 절반을 줄인다는 것이 훈련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기후 재난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고 내일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로 여긴다면, 개인과 교회는 물론 지역사회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애쓴다면 적어도 비행 고도 안정을 위해 비행기 승강타 등에 부착된 작은 방향타인 ‘트림 탭(trim-tab)’ 역할은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나 한 사람이나 우리 교회 한 곳이 할 수 있는 건 미약하지만, 우리가 지구 회복력을 지킬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가진 모든 것을 최대로 아우른다면 지구를 구할 위대한 변화는 촉진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맞을지라도 그를 믿고 끝까지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산 소망 된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이다.
유미호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