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 종교적 도그마는 역사적으로 경제를 망치는 족쇄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자금지법이다.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자금을 빌려줌에 있어 어떤 유형의 이자나 부담금도 금지했다. 이자금지법은 모세 오경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신약성경에도 누가복음 6장 34절과 35절에 예수의 입을 빌려 이자를 금지하는 구절이 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는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제들이 이자금지법을 지킬 것을 명시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자금지법을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확대한 것은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샤를마뉴였다.
자금을 빌려줄 때 이자를 받을 수 없으니 자금이 꼭 필요한 사람이 빌릴 수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것은 당연하다. 편법이 등장한 것 또한 당연하다. 이자는 금지돼 있었으나 자금의 대차거래가 아닌 공동투자의 수익 배분에 관해서는 제약이 없었다. 이자금지법에는 적지 않은 예외도 존재했다. 토지 개량을 하거나 농기구 또는 가축을 구입해야만 하는 경우 농부는 자금을 빌린 다음 매년 일정 금액을 투자자에게 평생 지대의 형태로 지급하는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계약을 렌테스(rentes)라고 했다. 지금 어떤 좌파 대선 후보가 주장하는 정부 기채(起債)의 형태 곧 영구채의 원조인 셈이다.
이자금지법이 가장 먼저 완화되기 시작한 것은 네덜란드이고, 영국에서는 헨리 8세의 치세에서다. 가톨릭으로부터 분리해 왕이 수장인 성공회를 창립한 그의 의회는 1545년 10%까지 이자를 허용하고 그 이상은 이자금지법에 저촉되는 고리대금이라고 선언했다. 그 이후 이자 상한은 계속해 하락했고, 영국에서 이자금지법이 완전히 폐지된 것은 1854년이다. 이자금지법은 1789년 프랑스혁명에 의해 종교적 도그마가 깨지기까지 유럽의 경제·사회·정치를 크게 제약했으며 유럽의 금융제도 발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의 도그마로부터 시작된 이자금지법은 하나의 질곡이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각종 금융 수단이 개발되지만 자금의 비효율적 배분은 피할 수 없었다. 한 번 도입된 나쁜 제도는 영속화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이념과 종교적 도그마 그리고 포퓰리즘에 따른 나쁜 정책이나 제도는 파국을 맞지 않고는 고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념의 도그마를 바탕으로 문재인정부는 자유와 시장질서에 갖가지 대못을 박는 규제를 도입했다. 대한민국 현실은 지금 온갖 대증적 처방이 난무하던 중세의 어느 전제국가인 것만 같다. 부동산시장은 정책 실패와 규제가 누적돼 더 이상 자유시장경제의 일부라 말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부동산시장만이 아니다. 금융, 노동, 기업, 정부 심지어는 사법과 법집행에까지 부과된 각종 규제와 포퓰리즘은 해결할 방법마저 요원해 보인다. 이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는 20세기 공산주의 실험의 실패가 잘 보여주고 있다. 21세기에 이념은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같은 것이다.
자유시장경제가 효율적인 것은 그 자체로 옳기 때문이라기보다 인간 본성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규제는 그것을 옭매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야만 한다. 자유시장경제가 가지고 있는 갖가지 모순을 방치하자는 말이 아니다. 고쳐 나가되 시장의 좋은 기능을 최대한 살려야만 한다. 경제를 망쳐가면서 분배나 소득 불평등 해소를 추구하는 것은 교각살우임을 왜 모르는가. 코로나19는 국민을 죽이고 있으나 문재인정부는 살리고 있다. 위기로 실정을 눈가림하는 것이 얼마 동안이나 가능하다고 보는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영원해야 하지 않을까.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