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가족 형태’ 개념엔 전통적인 가족을 해체하려는 의도 담겨

입력 2021-07-13 03:06
길원평 한동대 교수는 지난해 8월 극동방송과 가진 특별인터뷰에서 “유엔총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지 않는다”며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극동방송 유튜브 캡처

1990년대까지 국제법에서 결혼과 가족이 주된 관심 분야가 되지 못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1948년 유엔총회에서 결의된 세계인권선언 제16조는 다음과 같이 결혼과 가족에 관해 규정하고 있었다.

“성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한도 없이 혼인하고 가정을 이룰 권리를 가진다. (중략)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남녀 간 혼인과 가정에 관한 권리가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인간의 보편적 권리 중 하나로 선언된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사회·정치적 지위 향상이라는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주장이 변질하기 시작했다. 자연적이고 전통적인 혼인과 가족, 자녀 양육의 개념이 문제가 있으며,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 즉, 가족 개념의 변경 내지는 현대적인 혼인과 가족 개념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국제 사회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리처드 윌킨스 교수는 이런 견해 속엔 모성과 자녀 양육을 평가절하하려는 시도와, 자연적으로 발생한 가족을 해체하려는 주장이 포함돼 있다며 비판을 제기했다.

그는 먼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라거나 가족 내에서 이뤄지는 신앙이나 ‘종교적 신념 실행의 강요’도 위험하니 금지해야 한다는 등 자연 상태의 가정이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부모의 친권에 대해 국가의 제한이 필요하다거나 결혼을 남녀 이성 간 혼인으로만 국한해선 안 된다고 강요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가족 형태’란 점에 있어서 남녀로 이뤄진 부모뿐만 아니라 편부 편모 편조모 편조부 손자녀 백부·숙부 조카 등 다양한 형태가 가족에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혼인을 남녀 이성 간으로만 국한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주장과도 연결되는데, 합의만 있다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이룰 수 있는 권리가 혼인할 권리에서도 수용돼야 한다는 논리다. 동성 간 결혼이나 동거 관계도, 당사자들이 원하면 하나의 가족을 이룰 권리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콜롬비아에선 2016년 세 명의 남성 파트너들을 하나의 법적 가족 관계로 수용한 적도 있다. 그러나 동성혼에는 혼인이 인류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자녀 잉태와 양육, 즉 가족 재생산이라는 핵심 요소가 빠져 있다. 결혼과 가족 관념에서 자녀 출생을 단절시키려는 시도는 중대한 법적, 사회학적, 도덕적, 철학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로버트 조지 제럴드 브래들리 알크스 교수에 따르면, 혼인한 이성 간의 성관계는 본질적으로 ‘인간 선’이며 다른 관계에서의 성적 행위와는 상당히 다르다. 또 자연적인 가족은 생식이라는 생물학적 잠재력을 가진 유일한 성적 관계로서 남녀 간 결합을 통해 사회의 심오한 이익을 더욱 증진한다. 다른 성적 결합보다 이성간 결합을 우위에 놓는 건 ‘잠재적인 재생산 능력(procreative power)’이 우월한 사회적 이익의 기반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자연적, 전통적 혼인과 가족제도는 사회의 존속에 이바지하며, 이는 동성 결합, 인공수정, 대리모 등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의학기술의 적용을 통해서도 달성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녀들에게 정신 보건상의 어려움을 일으킬 수 있다.

동성혼 자녀 512명에 대한 심리·정신 보건상 연구 결과는 생물학적으로 동성인 커플에서 자란 자녀들이 2배 정도 많은 정신적, 감정적 문제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안정되고 자연적인 혼인은 부부와 자녀에게 심대한 혜택을 제공하며, 자연적인 혼인과 가족 구조의 붕괴는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가족 구성원들에게 부과하게 됨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Dr. Maria Sophia Aguirre(1999) 등)됐다.

동성결혼을 명시적으로 수용한 국제조약은 없다. 동성혼을 국내법으로 수용한 국가가 전 세계 190여개 국가 중 15% 정도인 20여개 국가라고 하니 국제관습법의 요건인 ‘널리 퍼진 국제 관습’ ‘법적 확신’ 중 어떤 요건도 충족했다고 할 수도 없다. 2016년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만장일치로 ‘두 남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은 프랑스법이 유럽 인권 협약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판결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혹자는 신앙의 실천과 종교 행사의 실행을 가족 내에서 교육하는 것이 아이와 여성의 권리 침해여서 국가가 이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에대한차별철폐위원회(CEDAW)와 아동권리위원회(CRC)는 종교, 신념과 편견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들은 부모들이 책임 있는 결혼생활에 대해 자녀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혜택조차 자녀들 스스로 차단할 수 있는, ‘사생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심지어 CEDAW보고서엔 “교회와 관련된 조직들은 여성에 관한 정부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CEDAW의 전면적 실행을 방해한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이런 조약기구의 의견과 보고서는 구속력 있는 국제조약의 해석이 아닌 전문가 그룹의 의견과 주장일 뿐이며,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다. 국제법의 ‘법원(source of law)’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명예살인’이나 ‘여성생식기 할례’와 같은 명백한 인권 침해적인, 가족 내 종교적 악습은 폐지돼야 하지만, 가족 내 종교적 교육을 차단할 수 있는 권리까지 국가가 공권적으로 보유하는 것은 지나치다. 다수의 가정 내 종교적 가르침은 배려와 사랑이며, 희생적인, 가정의 안정을 유지하게 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함을 유념해야 한다.

이상현 교수(숭실대 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