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뒤 찾아온 ‘림프부종’ 고통… 이젠 수술로 이겨낸다

입력 2021-07-12 21:14
초기엔 압박 치료… 일상 생활 불편
심할 땐 패혈증·기능 상실 위험도
우회술·이식술로 병증 개선 가능

고려대 구로병원 성형외과 문경철 교수가 양쪽 유방암 수술 후 림프부종이 생긴 50대 환자의 팔을 살펴보고 있다. 압박 스타킹이나 마사지 등 보존적 치료에 한계를 보이는 환자들에게 수술로 림프부종을 완화하는 방법이 최근 각광받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20년 전 유방암 2기로 오른쪽 유방과 겨드랑이 림프절 절제 수술을 받은 김모씨.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방사선 및 항암치료 후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6개월 뒤부터 오른쪽 팔이 퉁퉁 붓고 저리는 ‘림프부종’ 증상이 나타나 긴 세월 그녀를 괴롭혔다. 당시에는 스타킹 착용을 통한 압박치료만 가능했는데, 별 소용이 없었고 식당일을 매일 해야 해 지속하기도 어려웠다. 암은 이겨냈지만 20년간 후유증으로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그녀는 최근에서야 림프부종을 수술로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작년에 수술받고선 팔의 부종이 많이 좋아졌고 염증이나 감염도 줄어 지금은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다”며 만족함을 표시했다.

유방암은 여성암 발생률 1위(2018년 기준)로 10년간 계속 증가 추세다. 적극적인 건강검진으로 조기진단과 유방암 특성에 맞는 표준 치료법 덕분에 사망률은 낮은 편이다. 암 치료에 성공해 완치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환자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다른 암보다 크다.

하지만 김씨처럼 유방암 수술이나 항암·방사선 치료에 따르는 림프부종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전 세계적으로 유방암 환자 30명 중 1명이 림프부종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유방암 수술 시 겨드랑이 림프절을 함께 떼낸 환자의 대부분에서 림프부종을 겪는다. 유방암 림프절 전이가 있는 환자의 22%, 전이가 없는 환자의 6%에서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심한 림프부종이 생긴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 몸의 림프계는 혈관계와 비슷한 역할과 기능을 하며 전신에 분포해 있다. 혈액 중 백혈구 적혈구를 제외한 투명한 액체 성분인 ‘혈장(plasma)’은 삼투압 원리에 의해 혈관과 (연부)조직을 오간다. 조직 내에 혈장(흔히 림프액으로 불림)이 많이 남아있으면 붓는 증상이 나타난다.

라면처럼 짠 음식을 먹거나 무리한 뒤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붓는다든지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붓는 증상이 모두 림프계와 관련 있다. 마사지나 압박 등을 통해 부기를 뺀다는 건 조직 내 혈장을 물리적 방법을 통해 림프관이나 혈관으로 내보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림프계는 팔다리 같이 신체의 말단부에서 시작하며 중간 중간에 림프액의 저장소 격인 림프절을 갖고 있다. 림프절은 팔의 경우 겨드랑이, 다리는 무릎 뒤나 사타구니에 주로 위치해 있다. 림프계는 혈장 뿐 아니라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퍼지는 통로가 된다. 이 때문에 유방암 판정을 받으면 가장 가까운 겨드랑이 림프절 일부를 떼내서 암세포가 있는지 조직검사를 하는 것이다. 림프절 암 전이가 발견되면 림프절을 일부 혹은 전부 잘라내는 수술을 통해 암세포가 퍼지는 걸 원천차단한다. 부인과 암(난소암, 자궁경부암 등)이나 다리에 생기는 육종암, 피부암 등이 진단된 경우에는 사타구니 림프절을 떼내서 암 전이 여부를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림프절이 사라지면 팔다리에서 심장까지 림프액이 가지 못하고 정체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게 림프부종이다. 방사선 치료의 경우 림프절을 방사선으로 파괴시켜 확인되지 않은 암세포를 죽이지만 그로 인해 저장소가 사라져 림프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부종이 유발되는 것이다.


고려대구로병원 성형외과 문경철 교수는 12일 “림프부종은 선천성이나 기생충 감염 등에 의해서도 생기는데, 이런 일차성 림프부종은 후진국에 많고 한국 등 선진국에선 암수술 하면서 림프절의 부분 혹은 전부 절제를 통해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방암은 겨드랑이 림프절을 통해 전이가 잘 되는데 치료를 위해 림프절을 절제하면 해당 방향 팔에 거의 부종이 생긴다. 문 교수는 “지금은 의료술의 발전으로 림프절 최소 절제가 보편화됐지만 10년 전만 해도 2·3기 유방암 환자의 대부분이 림프절을 전부 잘라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들은 100% 림프부종을 겪는데 압박 스타킹 치료나 마사지 외에는 특별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해 수십 년간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부종 초기에는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악화하고 심하면 패혈증으로 진행돼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팔이 붓고 팽창하면 피부가 갈라지는데 그 틈으로 세균이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또 림프부종이 만성화되면 림프관이 처음에는 확장하면서 적응하지만 점점 망가져 동맥경화처럼 딱딱해지거나 얇아지면서 기능을 잃게 된다.

유방암 수술 후 림프부종이 생긴 경우 초기에는 압박 스타킹이나 마사지 등 보존적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이미 악화돼 림프관이 얇아지거나 딱딱해져 폐쇄되면 보존적 치료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문 교수는 “보존적 치료는 스타킹을 통한 압박이나 마사지 등으로 림프액을 물리적으로 짜주면서 심장 쪽으로 억지로 보내는 원리인데,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면서 “스타킹을 24시간 팔에 차고 생활하기가 쉽지 않고 부기가 심한 환자들은 쪼임이 커서 매우 불편하다. 많이 걷거나 팔을 이용해 일하는 사람들은 스타킹 착용을 포기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스타킹 압박이나 마사지 치료에 한계가 있는 이들에겐 수술이 권장된다. 수술은 림프관과 혈관(정맥)의 끝을 잘라서 이어붙이는 방식(림프-정맥 우회술)으로 림프관에 정체돼 있는 림프액을 정맥을 통해 심장 쪽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원리다. 이 방식은 림프관의 기능이 어느 정도 유지돼야 가능해 초기 림프부종 환자들에게 적합하다. 림프관이 다 망가진 경우엔 다른 부위에서 림프절을 떼어다가 겨드랑이에 옮겨 심어야 한다(림프 이식술).

문 교수는 “림프부종의 수술적 치료는 1㎜ 이하 작은 혈관과 림프관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지만 미세수술 기법이 필요해 국내에 시행하는 의료기관이 많지는 않다”면서 “수술 받은 환자 대상 연구에서 20~30%의 림프부종 완화 효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돼 암 환자 산정특례(본인 부담률 5~10%)를 받을 수 있다. 문 교수는 “최근에는 유방암 제거와 림프절 절제술과 동시에 림프부종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림프-정맥 우회술을 시행하기도 하는데, 신의료술인만큼 정부에서 건강보험 급여화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