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패션이다] 멀쩡하게 생긴 그녀의 능청… 과장·독설 없어도 웃긴다

입력 2021-07-10 04:08 수정 2021-07-10 04:08
직업이 심사위원이냐는 농담을 들을 만큼 각종 심사에 불려 다닌 적이 있다. 학교와 방송사를 오가고 틈날 때 글도 쓰다 보니 심사에 적합한(?) 조건이 갖춰진 게 아닐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심사하러 가다가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심사위원을 심사하는 기준은 뭘까. 주최 측도 이것저것 고려해서 심사를 위촉할 터인데 과연 그 과정은 투명할까. 자격을 부여받을 만큼 심사위원들은 공정하고 객관적일까.


심사(審査)란 자세하게 조사하여 등급이나 당락 따위를 결정하는 일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누가 나를 조사해 등급을 정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상을 준다면야 고맙지만 후보라고 이름을 올려놓고(수상자는 미리 정해놓고) 나중에 들러리로 박수만 쳐주는 역할이 분명하다면 일찌감치 사양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방송사가 해마다 주최하는 예능 시상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능프로그램이다. 연말정산의 성격이 강해서 기여도에 따라 분배가 이뤄진다. 속된 말로 ‘나눠 먹기’ 식이다. 말로는 시청자가 뽑는다고 하지만 실은 시청률(광고수주액)이 뽑았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집안 잔치인 만큼 내부에서도 상의 권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개인적으로 자주 심사에 참여한 시상이 백상예술대상이다. 이 상은 1965년 제1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으로 출발했다. 이름만으로도 짐작하겠지만 예능은 애당초 낄 틈이 없었다. 1986년에 이르러 한국백상예술대상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처음으로 코미디연기상이 신설됐다. 상이 만들어진 지 22년 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예능의 존재감을 인정해준 셈이다.

첫해 수상자는 이주일(MBC)과 임하룡(KBS)이었다. 여성 수상자는 없었다. 남녀 코미디연기상으로 분리되던 27회(1991년) 전까지 상을 받은 여성 예능인은 순서대로 이성미(SBS 1987) 배연정(MBC 1988) 김미화(KBS 1989) 딱 3명이었다. 방송사를 굳이 적시한 이유가 있을까. 나눠 먹기는 아니지만 나눠주기의 성격도 일정 부분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주최 측이 방송사에 추천을 의뢰했는데 만약에 한 방송사 출연자에게만 연거푸 상을 줬다가는 뭔지 모를 ‘뒤끝’이 작용하(리라 느껴지)던 때였다. 권위가 사라진 곳에는 권위주의가, 기회가 막연한 곳에는 기회주의가 서식한다는 걸 짐작게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확실히 남녀 예능상으로 명패가 붙여진 건 39회(2003년)부터다. 어찌 됐든 방송 3사(KMS)를 휘저으며, 혹은 아우르며 예능인에게 상을 준다는 점에서 작게나마 한국예능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고 있다. 심사위원이 전부 모였을 때 나는 이렇게 다짐하곤 했다. “먼 훗날 누군가 한국의 대중문화역사를 연구할 때 참고할 만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사명감으로 심사에 임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여성 예능인이다. 그 많은 사람을 다 언급하기 어려우므로 여기선 백상 수상자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에 앞서 이 상이 탄생하기 전에 활동했던 두 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거창하게 비유하자면 노벨문학상이 제정되기 전에 작품을 썼던 단테나 셰익스피어 같은 분들이다. 한 분은 개그우먼의 원조 격인 고춘자(본명 고임득 1922~1995)다. 스톱워치로 정확히 쟀는지는 모르지만 1분에 1500자를 숨 가쁘게 읽어 내리던 속사포(따발총) 만담의 주인공이다. 스탠딩개그가 주로 원맨쇼인 데 반해 만담은 두 명이 콤비를 이뤄서 하는 게 일반적이다. KBS라디오 ‘내 강산 좋을시고’(1967)에서 콤비로 활동한 장소팔(본명 장세건 1922~2002)과 함께 그녀는 부동의 개그스타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녀가 빠르게 말하면 ‘장소팔 고춘자’ 이름이 소환됐을 정도다. 만담(漫談)은 만화처럼 재미있게, 만평처럼 익살스럽게 하는 토크다. 흔히 시사만평이라고 하는 것처럼 거기엔 세상과 인심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녹아있었다.

또 한 사람의 예능인은 백금녀(본명 김정분 1931~1995)다. 고춘자 옆에 장소팔이 있었다면 백금녀 옆에 서영춘(1928~1986)이 있었다. ‘갈비씨와 뚱순이의 맞선소동’이라는 제목처럼 두 분은 외모부터가 대조적이었다. 남자는 말랐고 여자는 체구가 컸다. 지금 활동하는 이국주와 김민경의 오리지널이라 할 수 있다. ‘거꾸로 부부’라는 콩트에서 서영춘은 여장을, 백금녀는 남장을 해서 시청자를 포복절도케 만들었다. 달리 말해 장소팔 고춘자가 라디오스타였다면 이들은 보기만 해도 웃음을 유발하는 비디오스타였다.

백상예술대상 여성 예능인 부문에서 2회 수상자는 총 5명이다. 가나다순으로 적으면 김미화(1989, 2002), 김지선(1991, 2003), 김효진(1998, 1999), 이영자(1993, 2019), 조혜련(1996, 2004)이다. 혹시 3회 수상자는 없을까. 딱 한 명 있다. 바로 박미선(1991, 2000, 2009)이다.

증권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 학비 조달을 위해 MBC신인개그맨 선발대회(1988)에 나갔다. 개그 소재는 ‘내가 개그맨 되려는 이유’. 작년에 언니가 개그맨 시험 보러 왔다가 아버지에게 맞아 죽었고 자신은 언니의 한을 풀어주러 이 자리에 섰다는 황당한 내용인데 그런 내용을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능청스레 연기했다. 금상을 받았고 상금은 70만원이었다. 처음 MBC ‘일요일밤의 대행진’에서 맡은 코너는 ‘나의 일기’였다. 3분 동안 주저리주저리 독백하는 스탠딩개그였다. 그녀를 스타로 만든 ‘별난 여자’ 역시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시청자의 기대를 배반하는 반전 코미디였다.

PD가 본 여성 예능인은 크게 두 부류다. 강한 캐릭터와 귀여운 캐릭터. 김미화 이영자 조혜련이 전자라면 김지선 김효진은 후자다. 그렇다면 박미선은. 방송사에서 그녀를 볼 때마다 ‘데뷔가 데자뷔’라는 말이 떠올랐다. 데자뷔는 불어로 ‘본 적이 있다’는 뜻이다. 박미선의 데뷔캐릭터는 강한 여자도 아니고 귀여운 여자도 아니고 ‘별난 여자’였다. 데뷔가 워낙 강렬해 어떤 장면에서도 그녀의 캐릭터가 눈부시게 되살아났다. 예전 코미디에서는 누가 더 망가지는가, 혹은 스스로 얼마나 망가지는가를 웃음의 잣대로 들이대곤 했다. 박미선의 개그는 달랐다. 가학적이거나 자학적이 아니라 독립적이거나 주체적이었다. 망가지는 데도 명분과 철학(?)이 필요한데 그녀는 고상한 것과 괴상한 것의 차이 없음을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괴짜이긴 하지만 괴물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고정관념을 깼다.

유별남으로 33년을 버틸 수 있을까. 오래가려면 기대감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부담감이 없어야 한다. 그녀는 단거리 전력질주 형이 아니라 장거리 마라토너 형이다. 지치지도 않고 질리지도 않는 캐릭터다. 그래서 만담을 해도, 진행을 해도, 심지어 시트콤 속에서도 편안함을 준다. 과장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확장하고 연장한다. 오래가려면 독설보다 직설을 해야 한다는 것도 그녀는 증명했다.

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상으로 이야기를 맺는 게 좋겠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상식에서 대한민국 수상자들은 하나님부터 매니저까지 감사의 명단을 나열하는 일이 잦다. 장미희가 했던 ‘아름다운 밤입니다’와 황정민이 2005년 청룡영화제 때 했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뿐이다’가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다.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개그우먼 송은이는 2019 MBC연예대상에서 ‘내가 하는 말이 칼이 되지 않도록 그런 방송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지혜로운 수상소감을 전했다.

내가 직접 들은 박미선의 이상형은 편안한 사람이다. 웃음을 찾는 사람보다 웃음을 참는 사람이 많고 웃기는 사람을 무례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세상에서 그녀가 걸어온 웃음의 길이 편안해 보여서 참 다행이다.

주철환 프로듀서 겸 작가

[예능은 패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