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사기사건 핵심 로비스트인 정영제 전 옵티머스 대체투자 대표의 100여일간 도피 행각 전말이 뒤늦게 드러났다. 정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검거 전까지 중국 밀항설이 나올 정도로 검찰이 신병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검찰 수사망을 피해 국내에서 숨을 수 있도록 도운 건 승려와 사찰 신도들이었다.
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 전 대표가 지난해 8월 초 찾아간 도피처는 충북 소재 한 사찰이었다. 이 시기는 정 전 대표의 행방이 묘연해졌던 시점과 맞물린다. 정 전 대표는 지난해 7월까지도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등 대외활동을 했지만, 그달 말 옵티머스 경영진이 구속된 이후 자취를 감췄다.
정 전 대표는 해당 사찰의 승려 A씨에게 “머리가 복잡해서 왔다”며 머물 곳을 요청했다. 두 사람은 20여년 동안 알고 지낸 승려와 신도 사이였다. A씨는 정 전 대표가 인근 사찰 숙소 등에서 지낼 수 있게 도와주다가 그가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는 범죄자라는 걸 알게 됐다.
A씨는 이 사실을 안 뒤에도 정 전 대표의 도피를 도왔다. 알고 지내던 신도에게 차를 받아 정 전 대표에게 제공했고, 다른 신도에게 부탁해 정 전 대표가 지난해 9월까지 지낸 원룸도 구해줬다. “은신하는 동안 대포폰이 필요하다”는 정 전 대표의 요구에 대포폰까지 건넸다. 정 전 대표는 A씨와 사찰 신도들의 도움으로 원룸과 호텔, 펜션을 전전하며 100여일간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에는 A씨로부터 “정 전 대표를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라”는 지시를 받은 한 신도가 정 전 대표를 경북 포항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지방을 전전하던 정 전 대표는 한 달 뒤 돌연 이 신도를 다시 찾아와 “숨을 곳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해당 신도의 고향 후배가 운영하던 펜션에서 머물던 정 전 대표는 11월 25일 검거됐다.
도주를 도왔던 A씨와 신도들도 범인도피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고소영 판사는 A씨 등 4명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승복을 입은 A씨와 장정 3명이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는 광경이 연출됐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A씨 부탁을 받고 정 전 대표를 호텔에 숨겨준 사찰 직원 1명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함께 기소된 펜션 운영자 측은 ‘대가성의 차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정 전 대표가 누군지 몰랐고, 투숙비용을 정당하게 받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펜션 운영자는 정 전 대표를 아는 사람들만 대가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가 대가 없이 정 전 대표의 도주를 도운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A씨 측은 공소사실은 인정하지만 정 전 대표가 옵티머스 관련자라는 것은 몰랐다고 한다. 재판부는 정 전 대표를 증인으로 부를지 검토 중이다. 정 전 대표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을 속여 약 1060억원의 투자금을 받아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