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교생 숨지기 전 암시 메모… 학교 측은 막지 못했다

입력 2021-07-09 04:04
지난달 27일 강원도 한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된 A군의 유골함. A군이 남긴 메모 등에 따르면 A군은 숨지기 전 따돌림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유족 제공

“길거리 사람들은 밝아 보인다, 나는 그럴 수 없으니….”

강원도 한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난달 27일 숨진 채 발견된 A군이 사망 전 괴로움을 호소하는 메모를 추가로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 측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던 A군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해당 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물리적 폭행이 수반된 학교 폭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정신적 괴롭힘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학교 측은 A군을 괴롭혔다는 증언을 여러 건 확보했고, 다수가 가해자로 지목한 학생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앞서 학교 측은 A군 사망 후 A군이 학교폭력에 시달렸는지 등을 확인하는 설문지를 전교생에게 배포했다. 하지만 명시적인 폭력 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취재를 종합하면 A군은 숨지기 전 악의적인 소문에 휩싸이면서 교우관계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는 같은 학교 학생이 SNS에 A군을 음해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소문 탓에 일부 학생들이 A군을 아는 척하지 않거나 피하는 등 따돌렸다는 것이다.

SNS에 올라온 게시물이 삽시간에 사실처럼 번지면서 A군이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앞서 A군이 작성한 “나랑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고 소문은 그대로 굳어질 것 같다. 도와줘”라는 쪽지가 공개되기도 했다. 유족 측은 “피해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어도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정황이 많다”며 “집단 따돌림, 사이버 학교폭력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학교폭력 정황을 인지하고도 학교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A군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자해한 사실을 한 학생이 학교에 알렸음에도 학교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족 측은 “아이가 상당 기간 괴로워했고, 사망 2주 전 자해를 하는 등 극단적 선택 위험이 크다는 점을 학교 측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를 방관했다”고 주장했다.

A군 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어 따돌림이 발생할 경우 더욱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국민일보가 입수한 A군의 마지막 메모에는 죽음을 암시하는 단어와 신변을 비관하는 내용의 문장이 등장했다.

해당 사건은 A군 유족이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당시 유족 측이 공개한 쪽지에는 “내가 괜찮은 척하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하늘만 보면 눈물만 나온다” “나 진짜로 죽고 싶어. 나 안 괜찮아. 도와줘”라고 쓰여 있었다. 강원도교육청과 학교 측은 해당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