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60㎞ 강속구를 던지는 홈런왕. 만화에서나 가능한 캐릭터를 오타니 쇼헤이(27·LA 에인절스)가 현실에서 구현하고 있다. 오타니는 현재 세계 프로야구계의 유일무이한 이도류(二刀流) 선수다. 전설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가 양손에 각기 다른 칼을 들고 구사했던 검술을 일컫는 이도류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야구에선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게 이도류다.
아마추어에선 투타 겸업이 가능하지만 프로에 와서는 어렵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는 것과 다름없다고 여겨진다. 오타니는 이런 상식을 깨부수고 있다. 2013년 일본프로야구에 데뷔한 그는 다섯 시즌 동안 투수로 42승 15패에 평균자책점 2.52, 타자로는 0.286의 타율에 48홈런 166타점을 기록했다. 2018년부터 무대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로 옮겼다. 입성 첫해 4승 22홈런이라는 양호한 성적으로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팔꿈치 수술을 받고는 2년간 부진했다. 이도류 욕심을 그만 접고 한 포지션에 전념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절치부심한 오타니는 올해 야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그는 8일(한국시간)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32호 홈런을 터뜨려 아시아 선수 MLB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MLB 전체 홈런 1위 자리도 굳게 지켰다. 전날 경기에선 7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시즌 4승째)가 됐다. 1회초 투수 오타니가 내준 점수를 1회말에 타자 오타니가 1타점 2루타로 만회하는 등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쳤다. 오타니는 다음 주 열리는 올스타전에 MLB 사상 최초로 투수 겸 타자로 나선다.
소속팀 LA 에인절스의 감독은 “오타니와 비교하려면 베이브 루스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해 홈런왕이 된 루스는 중간에 잠시 투타 겸업을 한 적이 있다. 루스의 이도류 시절인 1919년 홈런 기록(29개)은 오타니가 이미 깼다. 오타니의 이도류는 남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어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천지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