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프들이 만든 춘천아트페스티벌, 20주년 맞아요”

입력 2021-07-10 04:07
춘천아트페스티벌이 올해 20회를 맞아 춘천공연예술제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스태프와 예술가의 재능기부로 유지돼 온 춘천아트페스티벌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끌고 온 장승헌 예술감독(왼쪽)과 최웅집 총감독이 지난 5일 서울의 한 공연장에서 국민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춘천아트페스티벌이 성년을 맞아 올해 춘천공연예술제로 이름을 바꿨다. 오는 13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축제극장 몸짓과 춘천인형극장에서 화려한 잔치를 연다. 그동안 8월 둘째 주 5일간 열리던 것에 비교해 6배 이상 기간이 늘어난 축제에는 38개 단체, 196명의 예술가가 참여한다.

춘천공연예술제의 장승헌 예술감독과 최웅집 총감독을 지난 5일 서울의 한 공연장에서 만났다. 올해 축제가 성대해진 배경이 아이러니했다. 장 예술감독은 “20회를 끝으로 춘천아트페스티벌의 문을 닫으려 했다”면서 “스태프의 십시일반 봉사와 예술가의 재능기부로 꾸려왔는데, 이런 식으로 축제를 이어가는 게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다. 최 총감독은 “공공 지원이 거의 없이 운영돼 온 저희 축제가 춘천의 축제 가운데 외부 평가 1위를 받아 큰 규모의 지원을 받게 됐다”며 “덕분에 올해는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대하게 치르게 됐다”고 말했다.

스태프와 예술가의 재능기부

2002년 춘천무용축제로 출발한 축제는 3회째인 2004년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춘천아트페스티벌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다. 2002년 당시 국내 최초의 민간 무용 기획사 MCT와 국내 최초로 무대 기술 스태프들이 뭉쳐 만든 주식회사 스탭서울 컴퍼니를 각각 이끌던 장 예술감독과 최 총감독이 “기존 방식과 다른 형태로 의미 있는 축제를 만들어 보자. 예술가와 스태프 등 참여자들이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자 자신의 것을 내놓아 만들면 더 즐겁지 않을까”라며 의기투합한 게 축제의 시작이다.

무용 기획자 출신인 장 예술감독은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그 열기를 무대로 가져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축제를 떠올렸다”고 했다. 무대 기술감독 출신의 최 총감독은 “예술가들이 제대로 한번 놀 수 있는 실험적 무대를 만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축제 장소는 자연스럽게 춘천으로 결정됐다. 1989년부터 춘천마임축제와 춘천인형극축제가 열리는 등 지역 도시로는 드물게 공연예술축제 인프라가 좋다고 봤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2002년 인구 30만명 안팎이었던 춘천이 도시 규모나 축제 인프라 면에서 제격이었다”면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춘천어린이회관의 야외무대를 활용하기로 했다. 공연은 무료로 진행하되 신청순으로 티켓을 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1회 축제는 32명의 스태프와 서울발레씨어터 등 4개 무용단이 참여했다. 춘천어린이회관 야외무대에서 하루 동안 열렸지만 제대로 된 무대를 만들기 위한 준비 기간은 5일이었다. 1회 축제가 호평을 받으면서 2회에는 이틀간 7개 무용단이 참여했다. 3회부터는 춘천아트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고 장르를 무용 외에 음악, 전통예술 등으로 넓히면서 10개 팀이 참여했다.

옛 춘천어린이회관에서 야외무대를 준비하는 스태프들. 춘천아트페스티벌 제공

2012년 춘천어린이회관이 춘천시에서 KT&G 소유로 바뀜에 따라 11회부터는 축제의 무대가 축제극장 몸짓 등으로 바뀌며 공연 기간이 5일로 늘어났다. 실내 공연장은 야외무대에 비해 스태프들의 품이 덜 들어 준비 시간이 적게 소요되기 때문이다.

역대 참여 스태프는 총 744명

춘천아트페스티벌에 참여한 스태프는 역대 총 744명, 예술가는 총 209단체 827명이다. 사진은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 춘천아트페스티벌 제공

최 총감독은 “스탭서울 소속의 무대·조명·음향 감독들을 비롯해 친한 스태프들이 축제에 참여할 겸 춘천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일정상 춘천에 오지 못하는 스태프들은 비싼 기자재를 선뜻 빌려준다”면서 “좋은 스태프가 있으면 예술가의 기량이 훨씬 좋아지기 마련이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은 그런 스태프의 정신으로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은 공모를 통해 예술가와 스태프, 자원봉사자를 모았다. 축제 측이 제공하는 것은 한림대 기숙사에 마련한 숙박 장소와 교통비 정도. 여기에 풍성한 먹거리와 축제 종료 후 인근 휴양림에서 춘천의 명물인 막국수와 닭갈비를 먹으며 마무리하는 ‘무박 2일 송별회’가 춘천아트페스티벌의 묘미다.

장 예술감독은 “춘천아트페스티벌에 한 번 참가하면 2~3번 이상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에서는 예술가들이 예우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든 장르를 통틀어 7회로 가장 많이 참여한 안무가 권령은. 사진작가 이도희 제공

19회까지 적지 않은 스태프와 예술가가 다녀갔다. 올해 20년을 기념해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역대 참여 스태프는 총 744명, 예술가는 총 209단체 827명이다. 스태프의 경우 1회 평균 64명이 축제에 참여했다. 예술가 중에는 안무가 권령은이 7회로 가장 많이 참여했다. 안무가 장은정과 이경은이 6회로 뒤를 이었다.

페스티벌에 5번 참여한 안무가 안성수. 사진작가 이도희 제공

스태프 가운데는 두 감독과 스탭서울 관계자 외에 이도희 사진작가가 10회 이상 참여해 눈길을 끈다. 최 총감독은 “이도희 작가를 비롯해 국내 최고 사진작가들이 참가해 공연 사진을 찍어줬다. 예술가 중에는 예산 문제로 제대로 된 공연 사진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춘천에 오면 최고 수준의 공연 사진을 가질 수 있다. 축제 측에서 개런티를 못 주는 만큼 이런 부분에서라도 예술가를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코로나19 탓에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축제를 치렀을 때는 예술가에게 고화질의 공연 영상을 촬영해 줬다”고 덧붙였다.


예술가 개런티 지급·공연 유료화 시도

올해 춘천공연예술제는 13∼17일 20회 기념 특별무대를 시작으로 다음 달 21일까지 무용 음악 연극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한림대 기숙사를 빌릴 수 없지만 지원금 덕분에 예술가에게 개런티를 제공한다.

춘천공연예술제는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2019년 축제의 창립 정신인 ‘십시일반’을 뜻하는 사단법인 텐스푼을 출범했다. 지자체의 예산을 공식 지원받으면서 국내 대표적 공연예술제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예술가와 스태프에 대한 개런티의 지급과 공연 유료화도 그 일환이다.

최 총감독은 “공연에 애정을 가진 스태프들이 없었다면 20년은 불가능했다. 개인적으로 갈망하던 사단법인도 설립됐고, 지자체의 예산도 공식적으로 마련돼 짐을 던 느낌이다”면서 “나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뒤편으로 물러나려고 한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