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를 받아 연극을 보았다. ‘완벽한 타인’이라는 연극이었다. 2018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원작은 2016년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다. 어느 곳에서 어느 언어로 만들어져도 동시대의 공감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검색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에서 18차례나 리메이크돼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이야기로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저녁 식사를 하는 오랜 친구들의 커플 모임. 누군가 고약한 게임을 제안한다. ‘각자의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잠금을 해제하고, 통화와 문자 메신저 이메일 등 모든 수신 내역을 공유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장난은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는 끝없이 전능하고 유용한 디바이스인 스마트폰이 여럿이 공유하는 순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물건이 되고 만다.
애인의 스마트폰을 몰래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칠 위기에 놓일진대, 심지어 여럿이서 식사 내내 스마트폰 속 내용을 공유해보잔다. 그런 어리석은 장난을 대체 왜 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관음이라는 본능에 기초한 장난이란 어쩌면 이렇게도 유혹적인 것인지. 나는 혼란스러운 부아를 느끼며 난장판이 된 무대를 노려보았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공연히 스마트폰을 열었다. 페이스 아이디로 잠금을 해제하고 여러 사람과 주고받으며 내뱉은 나의 말들을 살펴보았다. 위선과 위악, 진실과 허풍이 버무려진 활자들을 허탈하게 읽어나가며 아마 오늘 공연을 본 모든 관객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와 같은 모습으로 이렇게 자신의 스마트폰 액정을 물끄러미 보고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 물건을 지니고 있는 한 우리는 고슴도치와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 서로의 물건을 힐끔거리는 순간 가차 없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게 되는. 타인이라는 존재는 슬프게도 이렇게 끝내 완벽하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