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박영수 사의… 국정농단 특별검사 허망한 퇴장

입력 2021-07-08 04:07
연합뉴스

‘가짜 수산업자’ 김모(43·구속)씨의 회사 외제차를 빌려 타고, 김씨에게 현직 부장검사를 소개한 박영수(69·사법연수원 10기·사진) 특별검사가 7일 사의를 표명했다. 박 특검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처신으로 논란을 야기했다”며 “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4년7개월간 이어온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실체 규명 작업도 뜻밖의 암초에 부딪혔다. 김씨 측은 “이 사건은 무슨 게이트가 아니다”고 강조하지만 특검의 중도 하차로 파문은 점점 커지고 있다.

박 특검은 이날 “논란이 된 인물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이모 부장검사에게 소개해준 부분 등에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며 “더 이상 특별검사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냈다. 박 특검의 추천으로 임명된 특별검사보 2명도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특검 궐위 시 특검보가 독자적 소송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라고 박 특검은 설명했다.

현직 대통령까지 수사선상에 올리며 수많은 사건을 처리해 온 박 특검은 ‘가짜 수산업자’라는 돌발 변수에 휘말려 황망하게 중도 퇴직하게 됐다. 박 특검은 특검팀에서 함께 일한 이모 변호사 안내로 지난해 12월 며칠간 ‘포르쉐 파나메라4’ 차량을 시승했다. 박 특검은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 연식이 오래됐다며 결혼기념일을 맞아 새 차를 선물하고 싶어했다. 이 변호사가 “한번 타 보고 선택하시라”며 해당 차량을 권했고, 박 특검이 차량을 며칠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 차량은 이 변호사가 렌터카 회사를 운영하는 김씨에게 부탁해 제공받은 것이었다. 차량 도착부터 회수까지 탁송기사 연락처를 전달하는 일 등은 이 변호사가 도맡았다. 박 특검은 차량을 돌려준 뒤 이 변호사에게 비용을 지불하려다 김씨 회사 차량이었음을 알았다고 한다. 이름을 적은 봉투에 현금 250만원을 담아 이 변호사에게 줬다. 이 변호사가 “내가 김씨에게서 받아야 할 자문료가 있어 괜찮다”고 했지만 박 특검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포항에 있는 김씨를 만날 일이 없어 봉투를 잠시 보관했다. 이름까지 쓰여 있는 봉투를 임의로 열어 현금을 갖고 대신 계좌로 보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재판 업무로 대구를 방문한 지난 3월 김씨에게 봉투를 전달했다.

김씨는 최근 박 특검이 언론 보도에 등장하자 박 특검 앞으로 “죄송하다” “제게 많이 실망하고 놀라셨겠다”는 편지를 적었다고 한다. 김씨는 이 편지를 변호인인 이 변호사에게 건넸으나 이 변호사가 박 특검에게 따로 전달하진 않았다.

박 특검은 몇 가지 사건의 마지막 판결을 기다리며 국정농단 사태 백서를 작성 중이었다. 그는 지난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 실형 선고로 마무리되자 “특검이 종료돼야 새 시대가 열린다”며 몇 명 남지 않은 특검팀원을 독려했다. 박 특검의 중도하차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파기환송심,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사건의 상고심 업무는 후임 특검이 맡는다. 특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이상한 돌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김씨로부터 부적절한 금전적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조사중인 이 부장검사(부부장검사로 강등)와 관련해 “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통보되면 엄정한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경원 구승은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