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문화다, 상식·교양·삶의 양식이 돼야 한다

입력 2021-07-08 20:28 수정 2021-07-09 00:17

미증유의 코로나19 시대에 우리 삶을 가이드하는 건 과학이다. 과학이 뭘 해야 되는지 뭘 하면 안 되는지 알려주고 백신을 만들어 탈출 경로를 마련한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게 떠오른 건 이 시대 과학의 권위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는 팬데믹 시대의 예외적 풍경일 뿐이다. 평상시 과학은 우리 사회의 구석 자리에 처박혀 있다.

‘과학의 자리’는 한국 사회에서 과학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한 한 과학자의 분투를 보여준다. 17세기 이후 서구 지성사를 독창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리면서 과학을 사회적 학문으로, 과학자를 지식인으로 정립한다.

저자는 초파리와 꿀벌을 연구하는 유전행동학자인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다. 김우재는 먼저 과학과 인문학을 분리해서 보는 현대적 관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찰스 퍼시 스노의 저서 ‘두 문화’를 논파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어 17세기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근대과학이 등장한 이후 과학과 인문학, 과학과 사회, 과학과 역사가 서로 밀접하게 교섭해온 과정을 그려낸다.

예컨대 뉴턴의 고전역학과 근대과학의 발전이 볼테르와 디드로 등의 계몽사상가를 통해 프랑스혁명이라는 거대한 사회 변혁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음을 보여준다. 김우재는 과학이 새로운 발견과 학문적 방법론을 통해 경제학 사회학 윤리학 법학 등 주변 학문에 영향을 미치고 이런 학문이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방식으로 역사가 진보했다고 본다. 그러면서 과학을 모르는 철학은 “지적 원시인”에 불과하고 “과학이 빠진 모든 학술 논의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김우재의 이야기는 한국 과학으로 이어진다. 공학과 기술의 하위에 배치된 과학, 국가와 경제의 도구가 된 과학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한국 학계의 인문학 우월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가 과학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제안하는 것은 근래 유행해온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문화로서 과학’이다. “과학의 본질은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가에 있다”며 과학이 시민들의 상식, 교양 세계관, 삶의 양식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남중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