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권력… 불평등 부른 ‘주택광시대’

입력 2021-07-08 20:27
주택이 부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됐고 주택 소유 여부가 계급·계층을 결정하는 지배적 요소가 됐다고 주장하는 책 ‘이 모든 것은 자산에서 시작되었다’는 부동산에 몰두하는 우리 시대를 설명하는 매력적인 가설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주택이라는 새로운 렌즈는 불평등과 세대 갈등, 포퓰리즘 등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자극한다. 사이 제공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다만 세계 주요 도시의 집값이 다 올랐고, 집값을 잡는 데 성공한 정부가 거의 없다는 사실도 언급돼야 한다.

“부동산 가격 인플레이션은 지난 10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서구의 주요 도시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 왔다. 만약 이 문제가 지난 10년에 국한된 것이라면 무능하거나 부패한 엘리트 집단이 만들어낸 현저하게 부적절한 정책을 되짚어 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문제이며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금 터져 나오는 MZ세대의 불만 역시 세계적인 현상으로 그 중심에는 부동산 문제가 있다.

“1981년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지속적인 주택 가격 상승, 임금 정체, 임시 고용 방식 때문에 자산을 기반으로 한 부의 핵심적인 원천, 즉 ‘주택 소유’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자산의 가치 상승에 따른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내가 대통령이 되면 부동산을 잡을 수 있다는 정치인들의 약속은 얼마나 믿을 만할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들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률 하락을 초래하고 고용 성장을 위태롭게 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주택 시장을 다시 팽창시키는 정책에 반대할 수 있는 정부는 거의 없기 때문에 자산 중심의 불평등이 더욱 빠른 속도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따옴표로 인용한 내용들은 ‘이 모든 것은 자산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3명의 호주 사회학자들이 함께 쓴 이 책의 원제는 ‘디 애셋 이코노미’(The Asset Economy·자산 경제)다. 200쪽에 불과하지만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그어야 할 만큼 중요한 얘기로 채워져 있다.


“자산의 소유 여부가 새로운 계급 지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불평등을 초래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가치 상승 속도가 빠른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두 문장이 책의 핵심을 이룬다. 여기서 자산이란 주로 주택 자산을 말한다.

이는 매우 낯설고 흥미로운 주장이다. 우리는 그동안 자본이나 직업, 임금, 교육 등이 계급과 계층을 결정한다고 여겨왔다. 이 책은 자산이 계급·계층을 결정하는 더 지배적인 요소가 됐다고 주장한다. 배경에는 세계적으로 지속된 자산 인플레이션이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1980년대 초부터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이 부의 주요한 동력이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지난 수십 년간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는 현상이 지속했음을 보여줬다. 이 책 저자들은 자산의 수익률이 노동 수익률을 뛰어넘는 현상에 주목한다. 이는 ‘자산의 소유가 노동보다 더 돈이 된다’는 사람들의 감각에 부합한다.

지속하는 주택 가격 상승은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과 ‘자산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 간 격차를 크게 벌려 놓았다.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산 가치 상승에 따른 이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규모 도심지에서 발생하는 부동산 인플레이션이 새로운 불평등 논리의 핵심”이 됐다. 예전에는 같은 일을 하면 같은 계급으로 분류했지만 이제는 자산의 소유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하게 됐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렇게 주택이 부의 핵심적 원천이 됐지만 부동산 인플레이션과 임금 정체가 겹치면서 소득을 모아 주택을 소유하는 일은 예전에 비해 현저히 어려워졌다. 그러면서 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아니라 자산을 둘러싼 갈등이 주된 사회적 갈등으로 부상했다. 세대 갈등이 왜 이토록 심각해졌는지에 대한 힌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다만 부모나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수의 젊은이는 직업이나 임금에 상관없이 주택 소유에 참여할 수 있다. 주택을 마련해줌으로써 주택이 창출하는 ‘부의 효과’ 속으로 자녀를 진입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상속이나 증여의 가치는 과거에 비해 훨씬 중요해졌다. 부의 원천이 노동에서 자산으로 바뀌었다는 시각으로 보면 건물주가 왜 젊은이들의 꿈이 됐는지, 지금 시대에 왜 ‘세습 자본주의’라는 말이 유행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자산 경제’는 대담하고 매력적인 가설이다. 주택이라는 렌즈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불평등과 세대 갈등, 포퓰리즘 등을 분석하는 새로운 논의를 자극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