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이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문재인(얼굴) 대통령의 일본 방문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일본은 우리 정부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해법을 내놓아야 도쿄올림픽 기간 한·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청와대는 일단 회담을 연 뒤, 과거사를 포함한 양국 현안에 대해 ‘통 큰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방일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 내부 기류가 당초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에서 부정적인 쪽으로 바뀌고 있다. 유영민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주요 참모들은 지난 6일 문 대통령 주재 내부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와 이로 인한 양국 관계 개선 등의 성과가 전제돼야 일본을 방문할 수 있다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내부회의 이후 이른바 ‘조건부 방일론’을 공식 입장으로 내세웠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7일 “문 대통령 방일은 고려할 사안이 굉장히 많다. 한·일 회담과 그 성과가 예견되면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초 청와대는 지난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전까지는 문 대통령 방일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한 만큼 답방을 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많았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 취임 이후 한국 정상의 첫 일본 방문이 될 수도 있기에 청와대는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상수’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대화를 시작하고 갈등을 풀자는 우리 정부와 갈등이 풀려야 대화할 수 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서로 평행선을 달리면서 문 대통령의 방일 역시 무산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 됐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문 대통령은 임기중 한·일 관계 개선에 외교적 목표를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현충일 추념사에서 의인 이수현씨를 언급하며 “언젠가 한·일 양국의 협력 정신으로 부활할 것”이라 한 것도 대일 유화 메시지였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두고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고, 양국 정상의 만남의 장으로 올림픽이라는 국제 행사가 적합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 노력에도 올림픽의 전초전이었던 G7 기간 한·일 정상회담은 불발됐다. 양국 외교라인의 물밑 접촉에도 일본 정부가 계속 과거사 문제 해법을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걸면서 청와대 내부에선 ‘방일 회의론’이 힘을 얻는 상황이다.
특히 일본 언론이 문 대통령의 방일을 기정 사실처럼 보도하고 일본 정부가 이를 부인하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청와대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일본을 향해 “품격있게 외교에 임해달라”고 했다.
청와대는 도쿄올림픽 전까지 계속 일본과 정상회담 개최 조건을 논의할 방침이다. 문 대통령 방일 여부는 다음주 쯤 가닥이 잡힐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본과 계속 접촉하고 있다. 한·일 간 서로 의견이 접근돼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위안부·강제징용 판결이 사법 영역이고, 단기간 내 해결될 문제가 아니어서 일본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의 방일은 최종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외교가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도쿄올림픽 불참을 선언한 상황에서 한·일 정상이 만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세환 김영선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