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평(42) 작가는 데뷔작이 대표작이 됐다. 2016년 장편소설 ‘아몬드’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고, 이 책이 지금까지 80만부 팔리며 그의 이름에 자동으로 따라붙는 작품이 됐다.
손원평을 말할 때 따라붙는 또 하나의 단어가 영화다. 그는 소설가와 영화감독을 겸업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첫 영화 ‘침입자’를 개봉했고 최근엔 첫 소설집 ‘타인의 집’을 출간했다.
지난 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원평은 새 소설집에 대한 시장 반응에 다소 무신경한 듯했다.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모른다. 언론에서 10일 만에 2쇄를 찍었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아몬드’의 성공이 워낙 대단해서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었는데 “작가로서 대표작이 있다는 게 다행이고 감사하다”며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더라도 ‘아몬드’만큼 잘 되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전에 쓴 작품과 경쟁한다는 생각은 없다”며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주제들을 결과물로 만들어냈느냐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얘기는 영화로 이어졌다.
“영화는 하나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성공에 대한 부담도 크다. 전작이 아무리 좋았어도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큰 자본이 필요하고 수많은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그에 비교해 책은 성과 위주의 시장은 아니다. 독자들의 신망을 얻으면 발표할 기회가 있다. 작업을 해서 이렇게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책을 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손원평의 말은 겸손한 표현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기 작품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20·30대를 보냈다.
손원평은 20대 초부터 영화인으로 살아왔다. 영화아카데미를 다니고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스태프로 여러 영화에 참여했다. 40대가 돼서야 자신이 연출한 영화를 극장에서 선보일 수 있었다. 영화 ‘침입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속에서 개봉해 관객 53만명을 동원했다. 그는 “손익분기점은 못 넘었다”면서 “그래도 8년을 준비한, 저의 첫 상업영화를 극장에 걸었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손원평이 소설가가 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무 살 때부터 해마다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30대 후반에야 그 문을 열 수 있었다. 소설과 영화, 그 어느 것도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손원평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글을, 누구도 써달라고 하지 않는 글을 매일 쓰는 고통, 그게 생활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포기를 하든 노력을 하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뭘 하든 세상이 안 알아줬다. 내 선택은 다시 쓰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안 하면 뭘 할 건데. 할 수 있는 게 쓰는 것밖에 없으니까 그냥 다시 쓰는 것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글을 혼자 쓰고 있을 때, 세상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상관없이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그 결과물이 내게 남았다. 이 시간 동안 내가 이걸 썼다는 것, 그것만이 내 삶의 원동력이고 보람이었다.”
손원평은 “부족함 없이 자라난 것이 작가가 될 깜냥이 못 되는 거라 생각해 내적으로 부끄러웠던 시절도 있다”고 얘기했을 정도로 평탄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고 보니 길고 혹독한 실패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몬드’가 그를 세상으로 끌어올려 줬다.
영화를 오래 해온 이력이 소설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영화에서 체득한 스토리텔링 기법이나 영상문법이 손원평 소설에 특별한 매력을 불어넣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손원평은 “영화와 소설은 별개인 것 같다”고 답했다.
“소설은 개인의 내밀한 쪽을 쓰게 되고, 영화를 할 때는 대중의 즐거움을 중시하게 된다. 소설이 나 자신에 가까운 장르라면, 영화는 자본에 가까운 장르다. 영화는 아침에 현장에 나가면 100여명의 스태프가 기다리는 것이고, 소설은 집에서 노트북을 바라보며 오롯이 혼자 통과하는 것이다.”
다만 “요즘 문학시장을 보면 정통 문학계 출신이 아니라 정유정(간호사) 장류진(회사원) 김초엽(과학도)처럼 다른 분야에서 온 작가들이 성공하는 경향이 발견된다”며 “한국문학 독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문학에 서사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말도 했다.
“시적인 문학, 문장 자체를 중시하고 내밀한 감정을 호소하는 문학에 비해 서사를 천시했다. 여기서 벗어나 삶의 이야기를 갖고 들어오는 작가들, 이야기성을 가진 작가들에게 대중이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손원평은 “다양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어주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새 소설집 ‘타인의 집’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이 각각 다른 분위기와 형식을 보이는 것도 다양성에 대한 작가의 탐색을 반영한다.
손원평은 하반기에 동화 시리즈를 출간하며 또 다른 실험에 나선다.
“어른을 위한 소설은 쓰면서 뭔가 부담이 있다. 이 안에 주제가 더 담겨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어린이를 위한 글은 더 순수한 마음으로 쓸 수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그 마음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청소년소설에 이어 동화로 영역을 넓혀가는 것은 아이들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을 보여준다. 손원평은 지난해 ‘아몬드’ 인세 수입 중 2000만원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
“‘아몬드’의 독자평 중에서 제일 기쁜 것은 ‘옷만 사달라던 우리 아들이 책을 사달래요’ 같은 것이다. 어린 독자들을 독서의 세계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면 너무 뿌듯하다. 더 어린 독자들에게도 책 읽는 건 재미있는 거야, 이렇게 알려주고 싶다. 어린 시절의 내가 동화를 읽으면서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처럼.”
손원평은 앞으로도 소설과 영화를 같이 해나갈 계획이다.
“둘 다 좋다. 둘이 내 안에서 서로 보완해주는 게 있다. 여럿이 일하다 보면 혼자 하는 작업이 그립고, 혼자 일하다 보면 사람들과 함께하는 작업의 희열을 느끼고 싶고.”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