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오세훈의 서울, ‘개천용’ 나올까

입력 2021-07-08 04:07

오세훈 서울시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공정’과 ‘상생’을 강조해 왔다. 그는 지난달 24일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을 자청했다. 자신이 야심 차게 추진해온 서울형 교육플랫폼 ‘서울 런(Seoul Learn)’ 예산을 추가경정예산안에 편성했는데 시의회 상임위가 전액 삭감하자 이를 되살리기 위해 언론에 호소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정치를 시작한 이후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화두”라며 공정과 상생을 꺼냈다. 그는 “선거 때 공정과 상생을 강조했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과제이자 정치인 오세훈의 숙제”라고도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보듬고 북돋으며 다 함께 잘 살아가는 공정과 상생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취임식에서도 공정과 상생 가치를 바탕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2030세대를 위한 정책 마련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시 조직 개편에서도 노동민생정책관 직제를 공정상생정책관으로 바꿨을 정도다.

공정과 상생은 누구도 반대할 이유가 없는 시대정신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적 가치다. 다만 공정과 상생이 다분히 추상적인 개념이어서 구체적인 정책과 사업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취임 한 달 기자간담회 때 오 시장에게 노동민생정책관을 공정상생정책관으로 바꾼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공정과 상생은 민생과 노동을 포괄하는 상위개념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여기서 오 시장의 ‘계층이동 사다리론’을 살펴보자. 그는 “공정과 상생이라는 가치 아래 계층 간 이동을 위한 사다리를 놓아야 한다”며 “사다리의 복원이야말로 지금 이 시기에 꼭 필요한 정책적 담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육, 복지, 일자리, 주거 등 네 분야 사다리가 잘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했다. 계층이동 사다리 지표를 만들어 각 분야에 적용해 높은 점수를 받은 정책을 우선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했다.

‘서울 런’은 교육 사다리와 직결된다. 유명 강사의 온라인 강의 등 교육콘텐츠를 저렴하게 구매해 저소득층에 무료 제공하는 사업이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 런 예산은 일부 삭감돼 시의회를 통과했다. 오 시장은 “부모 소득 수준에 따라, 또 지역적 한계에 따라 학습자원에의 접근조차 차별적이라면 그것은 공정과 상생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33개 교육단체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 런이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저소득층 학생들의 학력 저하 원인이 학습 콘텐츠 부재가 아니라고 봤다. 과연 서울시가 좋은 교육콘텐츠를 저소득층에 무료 제공한다고 개천에서 용이 나올까. 더 구조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소득 양극화 해소, 공교육 정상화 등 근본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

오 시장의 안심소득은 복지 사다리의 일환이다. 기준 중위소득을 정해 그 이하 계층에 근로를 전제로 일정액을 하후상박으로 차등 지급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기준 중위소득을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 지원 대상이 제한적이고, 기존 복지예산을 돌려서 쓸 경우엔 기존 복지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일자리, 주거 분야 계층이동 사다리 놓기도 녹록지 않다.

이달 중순 발표될 ‘서울비전 2030’의 실천 과제들이 계층이동 사다리 복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니 지켜봐야겠다. 하지만 공정과 상생이 정치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공감을 얻으려면 더욱 치열한 고민과 충분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 전에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 이제 그 시작일 뿐이다.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