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세상, 달콤하게”… 두 목회자 섬김 한마음

입력 2021-07-09 17:17
신선한 채소와 맛있는 과일, 여기에 넉넉한 인심으로 마음마저 두둑하게 채워주는 야채가게 사장님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 송파구에서 ‘청춘야채가게’와 ‘스위트리’를 운영 중인 김혁(변두리교회) 박요섭(미와십자가교회) 목사다. 두 사람은 “주민과 소통하며 복음의 접촉점이 되는 야채가게는 ‘일상 공동체’”라고 입을 모았다.

이웃들 마음 보듬는 ‘청춘야채가게’

김혁 목사가 지난달 경기도 고양시 ‘청춘야채가게’에서 과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착한가게’로도 불리는 이곳에서 주민들은 고민을 나누고 따뜻한 위로를 얻어 간다. 고양=박효진기자

김 목사는 10여년간 대형교회를 두루 거치며 부교역자로 사역했다. 그는 ‘이 시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섰다. 교회의 교회 됨을 고민한 끝에 그는 건물 없는 작은 교회를 추구하며 2017년 경기도 고양시에 변두리교회를 개척했다. 김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인근 은혜교회(성하준 목사)의 예배 처소를 빌려 주일 오후 예배를 드리고, 변두리교회 공간에는 카페를 만들어 은혜교회와 공유한다.

개척을 하면서 ‘작은 자와 함께하겠다’고 다짐한 김 목사는 야채가게 사장이 되고 싶다는 한 청년의 꿈을 돕기 위해 성도들과 힘을 모아 같은 해 ‘청춘야채가게’를 오픈했다. 첫 달 매출이 30만원밖에 안 될 만큼 장사는 녹록지 않았다. 설상가상 가게를 개업한 지 8개월 만에 그 청년은 “장사가 적성이 아닌 것 같다”며 다른 길을 택했다.

청년을 대신해 야채가게 사장이 된 김 목사는 “가게를 통해 불신자들을 만날 수 있고, 재정적으로 자립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익함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청춘야채가게’는 지역주민들에게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정직한 가격에 판매하는 ‘착한가게’로 불린다. 이곳은 야채만 파는 게 아니라 마을 주민과 삶을 나누는 공간이 됐다. 사장님이 목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웃들은 야채를 사러 왔다가 고민을 나누고 따뜻한 위로를 얻어 간다.

판매 수익금은 변두리교회가 파주에 세운 대안학교 ‘허브스’ 운영비와 성도들의 자립을 돕는 지원금 등으로 사용된다. 지난해 3월에는 생계가 어려운 가정을 도와 ‘청춘야채가게’ 2호점을 오픈했다.

대안학교 ‘허브스’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독거노인을 섬기기 위해 ‘청춘야채가게’ 식재료를 이용해 만든 도시락.

대안학교에 재학 중인 30여명의 학생은 야채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올바른 경제관념과 소비 습관을 배우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과일과 야채로 도시락을 만들어 독거 어르신들을 찾아가 위로했다.

김 목사는 “교회가 찾아간다고 하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데 아이들이 과일을 들고 가면 문을 열어준다. 꼭 필요한 곳에 과일을 갖다 드릴 때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후배 목회자들이 기존 한국교회의 프로세스를 따르기보단 삶의 자리에서, 일상에서 세워가는 교회를 통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목회에 대한 소망을 가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신뢰주고 사랑 받는 ‘스위트리’

박요섭 목사가 지난달 서울 송파구 ‘스위트리’ 야채가게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곳은 정직한 맛과 착한 가격에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신석현 인턴기자

박 목사의 하루는 매일 새벽 4시 시작된다. 직접 트럭을 운전해 새벽시장에 나가 과일과 야채를 매입한다. ‘내 입에 맛있는 것을 손님에게 판매한다’는 경영원칙을 갖고 야채가게를 시작한 지 3년이나 됐지만 그는 “지금도 좋은 제품을 상인들과 적당한 가격에 흥정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초보 사장 시절엔 상인들에게 뒤통수 맞기도 여러 번, 직접 몸소 부딪히고 배우면서 이제는 상인들도 인정하는 깐깐한 사장이 됐다.

박 목사는 2014년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청소년 전문 사역자로 활동했다. 모태신앙으로 목회자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그는 “교회 안에서 자라고 사역하면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설교만 하던 박 목사가 세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정치인 선거캠프, 건강기능식품 회사를 전전하던 그는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과일 노점상을 운영하는 선배 목회자를 찾아가 일을 배웠다. 그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무모하다고도 했다. 박 목사는 “목회자로서 하나님이 만드신 과일과 야채를 판매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무슨 일을 하든지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승용차 트렁크에 야채와 과일을 실어 장사를 시작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맛과 가격이 정직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온라인 고객과 주문량도 늘어났다. 3년 만에 매장을 갖게 된 박 목사는 “때론 손님들에게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야 하나’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어떤 치열한 삶을 사는지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요섭(오른쪽) 목사가 지난해 미혼모 센터 도담하우스를 방문해 과일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박 목사는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지역교회와 미혼모 센터에 과일과 야채를 후원해 오고 있다. 그의 선행에 주민들도 아이 옷을 가게로 갖다주거나 물질로 함께 동참하고 있다. 그는 “목회자들이 일상 공동체에서 기독신앙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면서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