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극명해진 성적표… 문과 여학생 수학 1등급 ‘하늘 별따기’

입력 2021-07-10 04:05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에서 ‘문·이과 칸막이’를 치우자 여학생들이 상위 등급에서 대거 밀려나는 결과가 나왔다. 교육부는 올해 수능 수학에서 문과와 이과가 정면 승부를 벌이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문·이과 통합형 수능’인데 첫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가 지난달 29일 발표됐다.

문과생이 크게 불리할 것이란 예상을 뒷받침해주는 자료는 정부가 공개하지 않았다. 이과생이 상위 등급을 휩쓸어 버리는 현상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발생하자 공개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학생 대상으로 실험을 벌이고 결과가 좋지 않자 질책 받을 것을 걱정해 ‘입시 현장의 혼란 방지’를 명분으로 비공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예년처럼 남녀 성적 비교자료는 공개했는데 문·이과 통합형 수학에서 여학생들이 상위 등급에서 밀려나는 게 확인됐다. 이를 통해 문·이과 유불리 문제도 일정 부분 엿볼 수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공개한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영역/과목별 표준점수 도수분포’ 등을 종로학원하늘교육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수학 1등급에서 남학생 비율은 73.7%로 나타났다. 여학생 비율은 26.3%였다. 수학 1등급 자리 4개 중 3개가 남학생 차지였다. 이과생은 주로 가형, 문과생은 주로 나형으로 구분돼 치렀던 지난해는 어땠을까.

지난해 6월 모의평가 가형 1등급은 남학생 72.5%, 여학생 27.5%였다. 지난해 수능에서는 남학생 76%, 여학생 24% 수준이었다. 지난해 6월 모의평가와 수능 그리고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남학생 비율은 72.5~76%, 여학생은 24~27.5%였다. 이과 수험생 사이에서는 문·이과를 구분하든 통합하든 남녀 비율에서 차이가 크지 않았다.

반면 문과 여학생들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6월 모의평가 나형 1등급 비율은 남학생 51.9%, 여학생 48.1%였다. 지난해 수능에서도 각각 53.6%와 46.4%로 대략 남녀 비율이 5대 5 수준이었다. 통합형 첫 시험인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여학생 1등급 비율이 26.3%였으므로 지난해 6월 모의평가를 기준으로는 21.8% 포인트, 지난해 수능 대비 20.1% 포인트나 떨어졌다. 문·이과를 통합하지 않고 문과형 수학(나형)에서 1등급이 가능했던 인원 상당수가 2등급 이하로 밀려난 것이다. 이하 등급도 연쇄적으로 등급 하락을 맛볼 수밖에 없다.

올해 수능에서 ‘수학 1등급’으로 인쇄된 성적표를 받게 되는 여학생은 과거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다만 남녀 학생의 수학 실력차가 드러났다는 분석보다는 문과생 대다수가 이과생의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는 새 대입 제도의 민낯이 확인됐다는 분석이 더욱 타당해 보인다. 올해 6월 모의평가 수학 1등급 남녀 비율은 종전 가형의 남녀 비율과 엇비슷한 결과를 나타냈다. 문·이과 통합 수학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이과 수학 하나로 통합됐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종로학원 등 주요 입시업체들은 이번 6월 모의평가에서 수학 1등급을 받은 이과생(미적분 혹은 기하 선택자) 비중을 95% 안팎으로 보고 있다. 진로진학 교사 모임에서 제시하는 수치도 비슷하다. 문과와 이과는 수학에 투입하는 시간을 비롯해 학습량 자체가 다르다. 훈련 수준과 체급이 다른 선수를 같은 링에 올린 결과로 풀이된다. 이처럼 이과생의 수학 실력이 압도적이어서 ‘이과 수학=통합형 수학’이란 등식이 성립하는 구조이지 남녀의 수학 실력차로 보는 시각은 경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문과 수학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남학생이 통합형 수학으로 얼마나 등급이 하락하는지도 교육부가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다. 따라서 문·이과 칸막이가 문과 남학생과 여학생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단단한 보호막으로 작용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아무래도 이과보다는 문과 쪽에 여학생이 많기 때문에 문·이과 통합 수학의 여파가 여학생, 특히 문과 여학생에게 더 크게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탐구 성적도 새 대입 제도에서 문과 여학생이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올해 6월 모의평가 과학탐구 영역 1등급 비율을 보면 남학생 68.1%, 여학생 31.9%였다. 지난해 6월 모의평가와 수능에서 1등급을 받은 여학생 비율은 각각 26.6%와 26%였다. 여학생 1등급 비율이 5~6% 포인트 가량 상승한 것이다. 여학생들에게 비교적 유리한 약학대학 입시(여대 약대 정원 때문)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며 경쟁력 있는 이과 여학생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6년제 약대 입시를 겨냥한 N수생 중 실력 있는 여학생들이 다수 유입된 결과로도 추정 가능하다. 과학탐구 성적은 대체로 수학 점수와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수학 잘하는 학생이 과학도 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6월 모의평가 수학 1등급 여학생 비율 26.3% 가운데 문과 여학생이 설 자리는 더욱 비좁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