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비용 보전” 주장했는데… 2018년 산업부 문건엔 ‘0원’

입력 2021-07-07 04:04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월 8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법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백 전 장관 측은 “한국수력원자력 비용 보전 근거가 마련돼 있다”며 한수원에 손해를 끼쳤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반박했다. 뉴시스

월성원전 1호기 즉시 가동중단을 결정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손실을 보전할 전력산업기반기금을 근거로 “한국수력원자력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산업부는 실제 2018년 6월 한수원이 비용 보전을 요청하자 “개정될 법령의 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비용 보전 조치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회신했다.

그런데 산업부는 한수원에 비용 보전 조치를 회신한 시기에 “월성 1호기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조기 폐쇄되면 비용 보전 금액이 모두 ‘0원’”이라는 내부 문건을 남겼다. 경제성 평가를 수행하는 회계법인에는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이 낮게 나오는 방향으로 전기판매단가와 이용률 등의 변수를 입력하도록 적극적인 의견을 전달했다. 이는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할수록 적자”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결국 “보전될 것이라서 손해가 없다”는 백 전 장관 주장은 “그렇다면 왜 손해를 은폐하는 식으로 경제성 평가가 바뀌었느냐”는 의문에 부딪히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는 경제성 있는 원전을 폐쇄하면 세금으로 민간 보상이 불가피해지므로 정부가 ‘공짜 폐쇄’ 방안을 찾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산업부와 청와대가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는 한수원의 조기폐쇄 반대 의사를 알고도 이를 꺾었다고 본다.

산업부는 한수원에 ‘비용 보전 조치’ 답변을 하기까지 한수원이 보내온 공문의 문구를 4차례에 걸쳐 수정 요청했다. 처음 한수원이 답변을 요청했던 ‘월성 1호기의 잔존가치’ ‘계속 운전 시 즉시 정지 대비 기대수익’ 등의 항목이 이 과정에서 삭제됐다. 이는 경제성 평가와 결부된 딜레마를 보여준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월성 1호기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쇄된다면 산업부는 한수원이 제시한 항목에 대해 “비용 보전이 어렵다”고 회신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회신하면 한수원 이사회가 조기폐쇄를 의결하기도 힘들어지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백 전 장관 등을 기소하면서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불법 가동중단’으로 규정했다. 불법 가동중단의 실질적 의미는 ‘국가의 사유재산 침해’라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백 전 장관이 이때 배임을 교사했는지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시각을 구하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예정돼 있다. 백 전 장관 측은 “그간 수사 과정에서는 배임이 언급되지 않아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있다”고 했다.

백 전 장관 측은 “검찰이나 감사원의 논리는 무조건 경제성이 보장된다는 결론이 내려져야 했다는 것”이라며 “경제성은 여러 가정이나 추정 변수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 평가 과정에 원전 가동중단 압박이 있었다는 사실이 수사로 드러나 있다. 2018년 당시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수행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한수원 측에 “기분이 씁쓸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는 “처음에는 정확하고 합리적인 평가를 목적으로 일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수원과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맞추기 위한 작업이 돼 버린 듯하다”고 썼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