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의 뜨거운 공기, 한반도 지각·물폭탄 장마 불렀다

입력 2021-07-07 00:03
올해 장마가 기상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늦은 ‘지각 장마’가 된 배경으로 세계적인 이상 고온 현상이 꼽힌다. 러시아 모스크바와 북미 서부지역에서 누적된 뜨거운 공기가 거대한 기둥 역할을 하는 바람에 장마전선의 북상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소나기가 내리자 시민들이 급하게 피하는 모습. 연합뉴스

올 장마가 기상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늦은 ‘지각 장마’가 된 건 세계적 이상 고온 현상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미 서부 및 러시아 모스크바 지역을 달군 공기가 커다란 장벽처럼 막아서는 바람에 장마전선의 북상이 늦춰졌고, 한반도 상공의 공기 흐름도 정체돼 많은 비를 뿌릴 것으로 예측된다.

6일 한반도 주변에는 공기 흐름이 정체돼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캐나다 최고기온이 49.5도까지 오르는 등 북미 서부지역과 모스크바의 기록적인 이상 고온 현상이 저지고압능을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지고압능이란 뜨거운 공기가 차곡차곡 쌓여 팽창하면서 만들어진다. 높게 쌓인 공기 기둥이 공기 흐름을 가로막는 ‘블로킹 현상’을 유발한 것이다. 이 바람에 한반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편서풍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됐다.

앞서 모스크바에서 형성된 저지고압능은 장마전선의 북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몽골·만주에서 만들어진 차고 건조한 공기가 모스크바 저지고압능에 막혀 시계 방향으로 밀려 내려오면서 장마전선의 북상을 막은 것이다. 올해 장마가 1982년 이래 가장 늦은 장마로 기록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 현상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도 비유할 수 있다. 요금소 앞에 차량 대기가 길어지면서 정체가 이어지는 것처럼 모스크바와 북미 서부지역에서 이상 고온으로 형성된 저지고압능이 공기의 흐름을 막는 톨게이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저지고압능이 형성돼 한 지역에서 공기가 막히면 다른 지역 흐름에도 영향을 준다”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북미지역과 모스크바, 유럽 일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상 고온이 저지고압능을 확장시켜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온 현상은 장마철과 시기적으로 겹치면서 장마의 위력도 더하고 있다. 한 기상전문가는 “차고 무거운 공기는 내려오려 하고 습하고 따뜻한 공기는 북쪽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두 힘이 맞부딪히면서 강하게 충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스크바와 북미가 좌우를 막는 상황에서 그 사이에 낀 서로 다른 두 공기가 더 세게 밀어붙이면서 비구름떼가 강하게 발달했다”고 덧붙였다.

국내 장마에 영향을 주는 전 세계적 고온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서부지역의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에서는 지난 6월부터 40~50도에 달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 지역도 지난달 29일 49.6도를 기록해 캐나다 역사상 최고 기온을 찍었다. 러시아 모스크바도 마찬가지로 지난 6월 최고기온이 34.8도를 기록하면서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폭염을 맞고 있다.

이러한 이상 고온의 원인으로는 기후 변화로 인한 ‘열돔 현상(Heat Dome)’이 꼽힌다. 열돔 현상은 대기 상층부에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해 더운 공기를 가두면서 더위가 심해지는 현상이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이번 지각 장마와 잦은 강수는 전 세계적인 이상 기후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며 “1차적으로 농작물이나 수자원에 피해가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올해뿐 아니라 내년, 내후년으로 갈수록 기상을 예측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