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풍경화] ○○를 사랑하는 직업

입력 2021-07-10 04:05

요조 작가가 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에세이를 최근 어떤 분께 선물했더니 제목을 보고 하시는 말씀. “어? 우리 직업은 실패를 사랑하면 안 되는데….” 어업에 종사하는 선장님이시다. 선장으로서 실패란, 고기 잡으러 갔다가 빈 배로 돌아오는 일이거나,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기도 하다. 아차, 내가 선물을 잘못 골랐구나 싶었다. 물론 절반쯤 농담이다.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란 제목에는 가수이자 작가, 그리고 책방 주인으로서 숱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작가의 든든한 다짐이 담겨 있다.

이참에 편의점 점주라는 직업은 한 줄로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곧장 ‘폐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란 말이 떠올랐다. 유통기한 내에 팔리지 않아서 버려야 하는 삼각김밥, 샌드위치, 우유, 도시락, 컵라면 등이 매일 수북이 쌓인다. 편의점 점주의 일상은 그런 상품을 골라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걸 싸 들고 집에 돌아가는 일로 하루가 끝난다. 그러니까 폐기 종착역이 ‘나와 내 가족의 소화기관’인 셈이다. 이렇게 말하니 참 슬프구나.

그렇게 부정적으로 떠올릴 것이 아니라 감성 안테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껏 돌려 편의점 점주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그러니까 ‘○○를 사랑하는 직업’으로 말이다. 나는 ‘응답을 사랑하는 직업’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루에도 수백 명 손님을 맞는다. 매뉴얼대로 모든 손님에게 “어서 오세요, 편의점입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그냥 묵묵히 나가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항상 “수고하세요” “많이 파세요” 응답해주는 손님이 있다. 그런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주위가 환해지고 하루에 활력이 돋는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네 직업은 뭐니?” 하고 물었더니 “추가를 사랑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사장님, 여기 목살 2인분 추가요! 음료도 추가!” 헬스클럽 관장인 동생에게 물었더니 “정기권을 사랑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6개월, 1년짜리 정기권을 결심하는 회원들이 반갑고 고맙단다. “그래놓고 사흘만 출석하는 회원이 더 좋지 않아?”라고 짓궂게 물었더니 무슨 소리냐며 손사래를 친다. 멋진 근육 만들어 스튜디오에서 ‘보디 프로필’ 찍어 소셜미디어에 자랑하는 회원이 생겨날 때마다 직업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노래방을 운영하는 혜란 누님은 “매너를 사랑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업종 성격상 술 마시고 찾아오는 단체 손님들이 많은데 흥겨운 목소리로 왁작 떠들며 들어왔다가 “오늘 즐거웠어!” 하면서 어깨동무하고 나가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무슨 직업이든 캐시(현금)가 많이 들어오는 기쁨이 최고 아니겠어?” 역시 내숭 떨지 않는 직설법의 달인이다. 추가, 단골, 매너, 그리고 매출. 우리가 사랑하는 단어들이 담뿍 몰려오는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방이 꽉 차서 “손님, 죄송한데 10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라고 양해를 구하던, 코로나 이전 혜란 누님의 ‘봄날’도 다시 돌아오기를.

봉달호 작가·편의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