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이 정상처럼 여겨지고, 정상이 오히려 낯설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살아간다. 물론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논리로 자기 행위를 정당화한다. 어중간의 논리가 우리 의식을 장악하는 순간, 진실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생존을 위한 본능만 작동한다. 그러면 잠정적 평안은 얻을지 몰라도 영혼은 점점 남루해진다. 불투명성 속에 갇힌 영혼은 맑고 깨끗한 영혼을 만나면 부끄러움에 사로잡히지만, 동시에 그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기도 한다.
일평생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신앙은 삶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이다. 며칠 전 구순을 바라보는 원로 사회학자 한 분과 만났다. 마치 죽비로 맞는 것 같았다. 그 원로는 ‘비움’ ‘몸의 부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말씀하셨다. 그분에게 신앙은 형이상학적 이론이나 관념이 아니라 척박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구현돼야 할 삶이었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온다 하지 않던가. 그는 하나님의 꿈에 온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경이로운 집중력이었다.
여러 해 전 미국 남부 소도시인 플레인즈에 다녀온 적이 있다. 클라렌스 조르단 목사가 1942년 시작한 농업 공동체 ‘코이노니아 농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회학교 시절 그는 아주 극심한 인지 부조화에 시달렸다. 어린이 찬송가의 가사와 현실이 아주 달랐던 것이다. “빨강 노랑 검정 하양 그 어떤 색이든 하나님 눈에는 모두 존귀하다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어린이를 사랑하신다네”. 하지만 흑인 아이들은 넝마를 걸치고 있었고 씻지 못해 더러웠고, 늘 배고파 보였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어렴풋이 깨달은 것은 잘못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그는 플레인즈에 형제애와 비폭력, 경제적 나눔을 근본 원리로 삼는 기독교 생활 공동체를 세웠다. 공동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와 동료들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그 도시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동료로 받아들였다. 함께 예배드리고, 한 상에서 음식을 나눴다. 주위 사람들은 남부 전통을 깨는 일이라며 엄중하게 경고했고,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은 여러 차례 농장에 폭탄을 던지기도 했다. 그들은 공포를 주입함으로 공동체의 실험을 중단시키려 했지만 클라렌스는 포기할 줄 몰랐다. 마을 전체가 공모하여 코이노니아 팜에 어떤 물건도 팔지 않았고, 그곳에서 생산된 물건을 사지도 않았다. 지역 교회들조차 그 공모에 가담해 빨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기도 했다. 그러나 클라렌스와 공동체 구성원들은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공동체란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앙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방식, 즉 예수의 정신을 육화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을 통해 그리스도의 존귀함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일념으로 살았다. 이 단호하고도 겸허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온갖 시련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았다. 나희덕 시인은 자기에게 “시는 닻이고 돛이고 덫”이라고 말했다. 믿음 또한 그러하다. 믿음은 우리 마음이 표류하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닻이고, 바람을 타고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가도록 이끌어주는 돛이다. 그러나 믿음은 자기 확신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덫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를 붙들고 있는 것이 진리와 자유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는가 돌아보아야 할 때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