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출가는 저작권 없다? ‘허황후’서 불거진 논란

입력 2021-07-06 04:05
지난 4월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초연된 창작오페라 ‘허황후’의 한 장면. 오는 9월 대구뮤지컬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인 ‘허황후’는 연출가 교체에 따른 저작권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김해문화의전당 제공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오는 9월 공연 예정인 창작오페라 ‘허황후’와 관련해 최근 내용증명을 받았다. 지난 4월 8~10일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초연된 ‘허황후’의 이의주 연출가가 법무법인을 통해 보낸 것으로 김해문화재단과 지적재산권 관련 분쟁이 있으며 재공연하면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해문화재단이 가야사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허황후’는 지난해 공모를 통해 김숙영 작가와 김주원 작곡가를 선정했다. 이 연출가는 지난해 9월 연출 의뢰를 받고 초연에 참여했다. 갈등이 발생한 것은 김해문화재단이 대구오페라하우스 주최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허황후’를 출품하며 연출가로도 활동하는 김숙영 작가로 연출을 교체했기 때문이다. 이 연출가는 본인을 오리지널 연출가로 표기하고 저작권료를 일부 지급하라고 김해문화재단에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 연출가는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연출 의뢰를 수락한 후 바로 대본 연구에 들어갔고 10월부터 제작 스태프들과 회의를 하며 작품의 콘셉트를 제시했다”면서 “무대 의상 조명 분장 영상 등의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극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원작 대본에 없는 캐릭터들을 만들어 안무에 반영하게 했다”고 말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최근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티켓 판매를 시작하며 온라인에 공개했던 ‘허황후’의 제작진과 출연진 리스트에서 연출가를 삭제했다. 당초 김 작가를 사진과 함께 연출가로도 공개했지만 논란이 일자 뺐다.

이번 논란은 국내 저작권법이 연출가를 배우와 같은 ‘실연자’로 규정해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관련 있다. 국내 저작권법 제4조 제1항 3호는 연극저작물을 ‘연극 및 무용·무언극 그 밖의 연극저작물’이라 규정한다. 무용 작품에 대해 안무가, 무언극에 대해 판토마이미스트를 각각 저작자로 인정하지만 연극에선 연출가를 저작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저작권법 제2조 제4호는 실연자에 대해 ‘저작물을 연기·무용·연주·가창·구연·낭독 그 밖의 예능적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저작물이 아닌 것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주체라고 정의하며 ‘실연을 지휘·감독·연출하는 자’가 포함된다고 규정한다.

김해문화재단의 입장은 이 연출가와 실연자 계약을 한 만큼 ‘허황후’에 대한 저작권 요구는 무리라는 것이다. 김해문화재단 관계자는 “‘허황후’ 초연에 대해 전반적 디벨로핑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작가가 오페라 연출가로도 활동하고 있어 적임자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연출가를 저작권자로 볼지, 실연자로 볼지는 국가마다 다르다. 연출의 창작성을 인정해 저작자로 보는 추세이지만, 연극이 산업화하지 않은 분야여서 연출의 저작권을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못하는 나라가 아직 많다.

저작권 전문가인 홍승기 변호사는 “우리 저작권법이 연극의 연출가를 실연자로 묶어 두고 있으니 연극저작물은 아예 저작권 등록이 이뤄지지 않는다. 연출가도 안무가와 마찬가지로 연극의 영상물, 스틸사진, 연출노트 등을 이용해 저작권 등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연출가를 실연자로 파악하는 저작권법 규정부터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