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판타지인 게 분명하다. 캐나다의 한 자동차 회사 CEO에 오를 만큼 사회적으로 성공한 주인공 ‘마크’는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는다며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아내와 딸의 동의도 없이 무작정 고향인 이탈리아로 떠난다. 심지어 그 곳에서 할아버지가 남겨놓은 포도밭을 와이너리를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딸과도 사이가 안 좋고, 나이 들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마크를 보고 있자니 이 시대 나이 든 아버지들이 떠오른다. 영화 ‘와인 패밀리’는 일상에 지친 그들을 위로하는 작품이다.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짓고 싶다’는 그들의 환상을 스크린에 불러온다.
몇십 년 동안 손에 흙 한 번 안 묻혀본 사람이 갑자기 농사짓는 일이 쉬운 일이겠냐마는 영화는 그런 현실은 모로는 것처럼 물 흐르듯 전개된다. 그가 캐나다의 삶에서 도망친 비겁함을 신부에게 고해성사하자 “실수에 집착하는 것이 오히려 죄”라고 응원한다.
마크는 퇴직금까지 바쳐 20년 동안 밀린 포도밭의 세금을 메꾸는 무모함을 보인다. 와인을 만드는 법은 “구글링을 하면 된다”는 유쾌함이 영화를 감싼다. 마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대학을 자퇴했던 딸은 새 삶을 찾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유년 시절 친구들은 마크를 알아보고 그의 조력자로 등장하고, 그는 일자리 없이 말라가고 있는 고향 마을의 구원자가 된다.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은 그토록 강렬하다. 마크는 대학 졸업 직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할아버지 장례식에도 오지 못했다. 그렇게 바쁘게 살던 마크는 나이가 들고서야 할아버지의 묘소 앞에 처음 선다. 할아버지와 옆 농장 올리브를 서리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 땅이 자신의 일부라고 받아들인다.
‘가장’을 ‘청년’으로 바꾸면 지난 2018년 ‘힐링 영화’로 화제를 모았던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연상된다. 시험, 연애, 취업에서 모두 실패하고 고향 집에 돌아온 ‘혜원’은 고향에서 삶을 회복하고 미래를 꿈꾼다. 혜원의 선택이 사회에 지친 청년들을 위로했던 것처럼 마크의 무모한 선택이 결국 받아들여지는 모습은 귀향을 꿈꾸는 가장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미국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알려지지 않은 10곳’ 중 하나인 이탈리아 남부 아체렌자의 이국적인 풍광도 이 영화의 볼거리다. 고즈넉한 기차역과 그림 같은 언덕 마을, 그리고 이탈리아어가 고전 영화처럼 따뜻한 느낌을 준다. 아체렌자를 배경으로 하는 첫 영화 촬영에 마을 주민이 직접 참여해 마을 아이들이 캐스팅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케네스 카니오 칸첼라라의 인기 소설 ‘마르코 찾기(Finding Marco)’가 영화의 원작이다. ‘키스 앤드 크라이’로 이름을 알린 숀 시스터나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매트릭스’ ‘메멘토’ 등에 출연한 연기파 배우 조 판톨리아노가 마크 역을 맡았다. 지난해 캐나다에 디지털 개봉을 하며 3주 연속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5일 개봉.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