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기꾼에 놀아난 사회,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입력 2021-07-05 04:01
자칭 수산업자의 사기 행각에 정치인과 현직 검사, 경찰, 언론인의 연루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수감 중인 김모씨가 경찰에 관련 사실을 하나둘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 뿌리 깊은 고질인 이른바 권력집단과 업자 간의 추악한 부패 사슬의 일단이 공개됐다. 이 사건은 흔히 권력집단에 비유되는 정치권, 검경, 언론계가 외부 유혹에 얼마나 둔감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변호사 사무장 행세를 하며 사기치던 잡범에 불과했던 김씨가 재력가 행세를 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교도소에서 언론인 출신 정치인 A씨를 만나면서다. 김씨는 사기 혐의로 2016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A씨를 알게됐다. 이듬해 특별사면으로 출소해 1000억원대 유산을 상속받은 수산업자로 신분을 세탁한 그는 A씨 소개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정치인들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오징어 사업을 한다며 투자금을 받아 가로채는 수법으로 2018년 6월~올해 1월 7명으로부터 116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로 현재 수감 중이다. 김 전 대표 친형(피해액 86억5000만원)과 그에게 김 전 대표를 소개한 A씨(17억5000만원)도 사기를 당했다. 그는 사기 행각을 벌이면서 뒤탈이 생기지 않도록 힘을 쓸 수 있는 요로에 금품 로비를 벌였다. 현재까지 최근 부부장검사로 강등된 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와 경찰 총경, 조선일보 논설위원 출신 이동훈 전 윤석열 측 대변인, 엄성섭 TV조선 앵커 4명이 그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들에게 자동차와 고급시계, 골프채 등을 건넸다고 한다. 현직 검사와 경찰의 경우 수사 진척에 따라 뇌물죄로 혐의가 변경될 수도 있다.

김씨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까지 접촉한 것으로 미뤄볼 때 그의 로비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리고 상당 부분 로비가 통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가 지난해 3×3 농구위원회 회장에 취임한 이유와 배경을 설명하기 어렵다. 당시 그의 회장 취임식장엔 정치권과 언론계, 연예계 등의 축하 메시지가 쇄도했다. 한 사기꾼의 놀음에 사회 전체가 농락당한 느낌이다. 어처구니없는 이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어느 선까지 로비가 이뤄졌는지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적극 수사에 나서 국민적 의혹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