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풍자 몸짓인가… 전시장에 나타난 꿈틀꿈틀 ‘전투기’

입력 2021-07-04 19:53 수정 2021-07-11 17:23
피오나 배너 영상 작품 ‘프라나야마 오르간’의 한 장면. 바라캇 컨템포러리 제공

전시장에 바람 빠진 고무 튜브 재질의 커다란 물체가 있다. 그게 조금씩 괴물처럼 꿈틀대더니 어느 순간 바람이 꽉 차며 바퀴 달린 전투기로 변신한다.

전시장에 전투기가 착륙했다. 영국 여성 작가 피오나 배너(55)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삼청로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다. 이것은 실제 전투기이다. 정확하게는 ‘미끼 전투기’이다. 전투에서 전력을 과장해 적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해 고무풍선처럼 만든 위장 전투기를 말한다. 작가가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완전히 부풀려져 정지된 상태가 아니다.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위장 전투기는 생명체처럼 몸을 부풀리고 수축하면서 공간을 압도한다.

배너는 킹스턴 대학과 골드스미스 대학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2002년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터너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며 입지를 굳혔다. 이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선보였다. 그는 1990년 중반부터 포르노나 할리우드 전쟁 영화 속 원초적 욕망과 폭력의 장면을 언어로 치환해 보여주는 ‘단어 풍경(wordscapes)’ 등의 작업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개념미술처럼 언어적인 작업을 하던 그가 이번 전시에서는 설치미술이나 조각, 회화 등 물질적인 작품을 들고 나왔다.

최근 전시장에서 가진 줌 인터뷰에서 작가는 “어릴 적 산을 지나가는 전투기에 매료됐다. 폭력적인 것이 주는 매력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처음엔 전투기 몸체에 포르노 장면을 묘사해 써넣었다. 작가는 포르노와 전쟁은 그 폭력성과 가학성 등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미끼 전투기가 공장에서 생산되는 장면을 보고 작가는 공기를 넣었다 뺐다하는 과정에서 ‘힘(권력)’의 이미지를 보았다고 했다.

작가는 미끼 전투기를 옷처럼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 영상도 선보이고 있다. 영상 작품 ‘프라나야마 오르간’에서 미끼 전투기를 입은 여성 2명이 펼치는 춤사위는 서로 공격하는 것 같지만 때로는 애정 행위를 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전시 제목 ‘프라나야마 타이푼’은 고대 인도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호흡법인 ‘프라나야마’와 자연의 대재앙 현상이자 전투기의 이름이기도 한 ‘타이푼(태풍)’의 합성어로 만들어졌다. 예측 불가하고 파괴적인 자연의 힘과 인간의 호흡 사이의 충돌을 암시한다. 배너는 코로나로 인해 영국이 전면 봉쇄된 시기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코로나 시대를 풍자한 작품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작가의 활동명은 ‘피오나 배너 aka 더 배니티 프레스’이다. 제목에서 ‘a. k. a.’는 ‘으로도 알려진(also known as)’을 뜻하는 약어다. 작가는 자신의 몸 자체를 출판물로 등록해 ‘허영의 출판사(The Vanity Press)’라고 이름 붙였다. 전시는 내용이 없는 언어의 상징, 언어의 공허함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작가는 조각도 출판물이라고 생각하며 ‘ISBN'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8월 15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