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상현)는 30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기소하며 이 사건을 ‘월성 원전 1호기 불법 가동중단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간 검찰은 이번 사건을 ‘월성 원전 관련 사건’으로 지칭해왔다. 정부와 청와대가 ‘공짜 폐쇄’를 위해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이 없는 것처럼 평가 결과를 조작했고, 이는 한수원의 1481억원 손해로 이어졌다는 것이 검찰이 복원해낸 ‘불법 가동중단’의 실체다.
대전지검 수사팀과 대검찰청 지휘부는 이날 기소에 이르기까지 협의를 거듭했다. 수사팀은 민간에 대한 보상 없이 이뤄진 원전 가동중단이 사유재산 침해에 해당하며, 이는 직권남용일 뿐만 아니라 거대한 배임 행위로도 봐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를 지휘하는 대검은 정의 자체가 까다로운 배임죄 적용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백 전 장관에게 향후 닥칠 손해의 인식이 있었는지 보다 명확히 제시돼야 한다는 점도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정환 대전지검장에 이어 수사팀원들이 대검을 방문하면서 대검과 수사팀이 접점을 찾았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일단 수사팀이 정 사장에 대해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는 것을 승인했다. “월성 원전을 계속 가동하면 이익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식으로 평가 결과를 조작한 것에 대형 경제범죄의 의미까지 부여한 것이라고 법조계는 풀이한다. 한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사회적 관심은 일단 손실과 책임에 있었다”며 “그저 직권남용으로 볼 것인지 배임으로도 볼 것인지는 수사 성과에서도 차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그러면서도 백 전 장관이 정 사장의 배임을 ‘교사’한 혐의에 대해서는 시민사회 의견을 들은 뒤 재차 판단토록 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해 외부 의견을 듣도록 직권 결정한 것이다. 수사팀은 혐의 입증을 자신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배임교사 혐의가 적용된 전례 자체가 드물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결국 수사팀의 의견을 수용한 부분도, 수사지휘가 이뤄진 부분도 있다”고 평가했다.
월성 원전 수사는 검찰이 지난해 10월 감사원으로부터 상세한 수사 참고자료를 건네받으며 시작됐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사무실에 침입해 월성 1호기 관련 파일들을 무단 삭제한 사건이 드러나 원전 조기 폐쇄 의혹 전모를 밝히라는 사회적 요구도 컸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2018년 5월 작성한 ‘북원추’ 문건도 많은 파장을 낳았다.
전직 장관과 청와대 관계자가 수사선상에 오르자 여권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청부수사 우려가 있다” “사실상 각하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된 검찰 수사는 법원의 판단을 남겨두게 됐다. 대전지검은 “향후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나머지 피고발인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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