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다. 중국은 지난해 3800억 달러(약 424조원)어치 반도체를 해외에서 들여왔다. 반도체 공급이 끊길 경우 휴대전화 TV 전기차 등 중국의 주력 제품 생산 라인이 멈출 수밖에 없다.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는 미국은 중국에 대한 제재를 반도체 분야에 집중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고 한때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시장 세계 1위를 다투던 화웨이는 생사의 갈림길에 내몰렸다.
중국도 맥없이 당할 수만 없다는 태세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측근이자 경제 책사인 류허 국무원 부총리를 반도체 정책 총괄 사령탑으로 낙점했다. 또 반도체를 ‘인체의 심장’에 비유하며 개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정부의 총력 지원에 힘입어 내년 말까지 첨단 미세공정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14㎚(나노미터)급 반도체를 자체 기술로 양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를 따라잡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가 바로 인프라”라고 했다. 반도체를 국가 안보가 걸린 전략물자로 본다는 뜻이다. 그리고 삼성전자 같은 외국 반도체 제조업체에 ‘미국에서 만들고 미국에 판매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안달 난 것은 중국 못지않게 반도체가 자국의 약점이기 때문이다. 자기자본수익률(ROE)만 중시했던 미국 업계는 연구개발(R&D)과 판매만 직접 하고, 고정비가 많이 드는 생산은 위탁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 결과 세계 반도체 시장 판매점유율은 47%지만 생산점유율은 12%에 그치고 있다. 생산은 아시아의 한국과 대만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의 힘겨루기가 시작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수출이 차질을 빚을 경우 미국 산업계 역시 ‘올 스톱’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 것이다. 차량 반도체 부족 사태가 보여주듯 반도체 공급이 끊기면 전투기, 우주항공 등 국방산업 타격도 불가피해 실제 안보 위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미 국방부와 상무부가 직접 반도체 기술 보호에 나섰고, 의회도 힘을 보태고 있다. 2024년 안에 파운드리 공장을 지을 경우 40%까지 환불해주는 세액공제프로그램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4차 산업혁명은 스마트폰과 자동차, 가전기기 사용으로 생성된 빅데이터 등을 이용해 인공지능(AI)과 로봇을 누가 잘 만드느냐의 경쟁으로 축약된다. 그런데 반도체가 없다면 스마트폰, 자동차, 가전기기 등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다. ‘칩을 지배하는 사람이 21세기를 지배한다’는 말이 나온 이유고, 미·중이 반도체 수급 확보에 사활을 건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이라는 것은 축복이다. 전 세계 시장의 64%를 점유하고 있는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이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을 막고 있다는 분석처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기지는 우리나라를 지켜줄 방패이자 무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D램 시장의 72%를 점유하고 있는 초강력 무기는 영원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 일본이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 뒤 우리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위기를 타개한 것처럼, 절실함으로 똘똘 뭉쳐 추격하는 중국을 상대로 ‘초격차’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대규모 설비 투자와 고성능 제조 장비 확보가 초격차 유지의 관건이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 건 힘들다. 전력·용수 공급 방안 마련부터 지자체와 지역 주민 갈등 조정 등 어느 하나 수월한 게 없다. 정부가 설비투자액 세금 감면을 공언했지만 업계는 그 수준이 과연 미·중처럼 파격적일지, 또 반도체 특별법이 빨리 국회를 통과할지 의심하고 있다. 이제 여당 내 반도체특별위원회가 ‘우리에게 반도체는?’이란 물음에 답을 내놓을 때다.
한장희 산업부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