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 시대다. AI는 지금 산업 기술 학문 예술 생활 등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다. AI가 미래의 부와 국가경쟁력을 결정지을 거라는 얘기가 흘러넘친다. 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 즉 특이점(singularity)이 멀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구글 기술이사인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까지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AI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일까. AI의 발전으로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이 조만간 나올 것인가. 로봇이 인간에게 대항하는 세상을 걱정해야 할까.
‘2029 기계가 멈추는 날’은 AI를 둘러싼 얘기들이 낙관적인 쪽이든 비관적인 쪽이든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고 말한다. 지난 몇 년간 AI가 놀라울 정도로 진보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높은 나무에 성공적으로 올랐다고 해서 달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겨우 인지의 한 측면에서 거둔 작은 성공으로 인지의 모든 측면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검색을 보자. 웹 검색은 AI가 이룬 성공 스토리 중 가장 대단한 것이다. 웹 검색은 수십억 개의 웹 문서 가운데 가장 적합한 것을 거의 즉각적으로 찾아낸다. 그러나 구글 서치는 여전히 독해 능력이 없다.
“구글이 질문을 읽고 직접적인 답을 내놓는 검색은 여전히 극히 소수에 머무르고 있다. 답이 아닌 링크를 얻는다는 것은 구글이 진정한 이해가 아니라 단순히 핵심어나 링크 집계와 같은 것에만 의존한다는 신호다.”
AI는 음성과 대상을 인식하는 데에서도 놀라운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음성 인식과 대상 인식은 지능이 아니다. 지능의 단편에 불과하다. “진정한 지능에는 추론 언어 유추가 필요하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이들 중 어떤 것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아직 법률 계약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AI 시스템이 없다.… 딥러닝에게는 넷플릭스에서 오래된 영화들의 줄거리를 적절히 요약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조차 지나친 요구다.”
로봇은 어디까지 왔을까. 우리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저녁을 뚝딱 차려내는 가정용 로봇을 원하지만 지금 가진 것은 고작 바퀴가 달린 하키 퍽 모양의 로봇청소기 ‘룸바’다. “룸바가 휴머노이드 가정부가 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책을 쓴 두 저자는 미국 뉴욕대 교수들로 AI 연구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전문가들이다. 게리 마커스는 인간 마음의 기원을 연구하는 심리학·신경과학자이며, 어니스트 데이비스는 AI의 상식적 추론 영역에서 독보적인 컴퓨터공학자다.
저자들은 진정한 AI 혁명은 ‘인간이 신뢰할 수 있는 AI’ ‘범용지능을 갖춘 AI’로 탈바꿈할 때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딥러닝(deep learning)에만 치중하는 현재의 AI 연구는 잘못된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조건과 규칙이 정해진 닫힌계에서만 유용한 딥러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AI’ ‘제한적인 AI’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닫힌계에 끼워 맞춰진 능력이 아닌, 범용지능에 의지해서 열린계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분야 전체를 진전시키는 열쇠”라는 게 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이들은 딥언더스탠딩(deep understanding)을 AI 연구의 다음 단계로 제시한다. “AI의 전환점은 상식과 추론 영역에서의 딥언더스탠딩, 즉 심층적 이해에 대한 문제의 해결점이 보이는 순간”이며, 여기에 도착하는 시간은 “10년이 걸릴 수도, 10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과대 선전이나 맹신, 또는 종말론적 공포에 휩싸여있는 AI 담론 속에서 지성적이고 균형 잡힌 시야를 제공한다.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썼다는 점도 장점이다.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 주제인 로봇의 역습은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까. “적어도 가까운 미래까지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들의 인지 능력은 대단히 좁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수도 없이 많다.… 더 중요한 것은 AI가 생겨난 지 60년이 지났지만 ‘악의’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기계들은 영토든 소유권이든 자랑거리든 지금껏 싸움이 벌어진 어떤 대상을 두고도 사람과 다툴 생각이 없다.… AI들은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한 나머지 큰 그림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하인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