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두 개의 세계를 살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발을 땅에 딛고 있는 현실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통해 인터넷으로 연결된 가상세계다. 가상세계를 다양하게 발전시켜서 요즘은 메타버스(metaverse)라는 말을 사용한다. 메타(meta·가공 초월)와 유니버스(universe·세계)의 합성어로,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SNS는 물론 인터넷과 연결돼 현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기재를 총망라한다. 메타버스는 이제 우리의 삶이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로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미 가상세계가 현실세계에 흡수됐고, 가상세계는 ‘가짜’가 아니라 현실에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이들만이 이 두 세계를 사는 것은 아니다. 휴대전화를 그저 전화기로만 사용하던 세대까지도 이제는 두 세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 중 하나다. 코로나는 메타버스의 삶을 예상보다 빨리 촉진했고 확장했다. 불가피하고 발전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온라인예배가 대표적이다. 과거에 일부만 드렸던 온라인예배는 코로나로 말미암아 대부분 연령층으로 확대됐다. 이제는 오히려 대면예배의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교회는,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드리는 예배가 어떻게 정당성을 획득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학생들은 꼭 학교에 가야 하는지를 묻고, 교인들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진짜냐고 묻게 된 것이다.
온라인으로 하는 교육과 예배에 던졌던 의혹들은 이제 다시 오프라인으로 되돌아왔다. 메타버스의 확산은, 여기저기 오고 갔던 육체적 움직임의 불편과 노고가 얼마나 컸는지를 상기시키며 삶이 얼마나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차피 두 세계를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현실세계와 메타버스 어느 쪽에도 단점과 장점이 있다면, 그때그때 원하는 세계를 취사선택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우리는 어느새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 두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그러나 두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 좋아진 세상을 혼자서 음미할 수 없다. ‘내가 너의 의견, 네가 입은 옷, 네가 먹는 음식에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줘야 한다. 내가 대면예배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예배를 드렸고 여전히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증명해야 한다. 오프라인에서 부재한 ‘나’의 존재를 드러내 주며 온라인에서 ‘나’를 증명하는 것은 바로 ‘좋아요’다. ‘좋아요’는 ‘나는 당신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이 있는 그곳에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표다. 이 ‘좋아요’가 없다면 예배시간에 교회에 있지 않았던 ‘나’를 증명할 길이 없다. 더불어 ‘믿음’을 보여줄 방도도 없다. ‘좋아요’는 메타버스를 떠도는 우리의 흔적이 됐다.
그러나 ‘좋아요’를 누른다고 ‘나’의 실존이 증명될 수 있을까. ‘좋아요’의 쌓이는 숫자가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좋아요’는 한편으로 경험의 허구성을 극대화한다. 내가 본 음식은 내가 먹은 음식이 아니다. 내가 들은 설교가 나에게 진정한 깨달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감동한 예배가 나의 믿음을 곧바로 실현시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누른 ‘좋아요’와 나에게 쌓이는 ‘좋아요’가 진정으로 ‘나’를 드러낼 수 없다면 온라인 세계의 ‘나’와 오프라인 세계의 ‘삶’을 연결할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누구도 두 세계를 벗어날 수 없기에 흔들리지 않는 방법으로 ‘나’의 존재를 드러내며 ‘나’의 삶과 믿음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은 코로나가 준 또 다른 과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를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다.
김호경 서울장로회신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