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79번지. 금강제화 종로점 뒤편, 조선시대 피맛길로 불린 골목 북편의 공평구역 제15·16지구 유적을 발굴하던 (재)수도문물연구원 연구원들이 뭔가를 발견했다. 잘려나간 총통(銃筒)이 땅속에서 나오더니 동종도 보였다. 총통 옆 깨진 항아리에서 공깃돌 같은 게 툭 떨어졌다. 씻어보니 금속활자였다.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 원장은 “긴급히 항아리를 수습해서 보니 활자 1600점이 무더기로 들어 있었다”며 “한국 서지학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역사적 발굴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29일 수도문물연구원과 함께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평구역 유적 발굴 성과를 공개했다. 15∼16세기 조선 전기 금속활자가 이처럼 무더기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한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을해자’(1455년) 약 30점만 있었다. 이번 발굴에선 ‘을해자’보다 20년 이른 세종 때의 한자 활자 ‘갑인자’(1434년)로 보이는 실물 금속활자가 다량 확인됐다.
경북대 백두현 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활자가 추후 연구를 통해 ‘갑인자’로 최종 확인되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금속활자가 된다”며 “독일 구텐베르크의 인쇄(1450년쯤)보다 이른 시기의 실물 금속활자를 최초로 확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조선 태종 때 만든 ‘계미자’(1403년)로 찍은 책은 있지만, 실물 활자 자체는 전해지지 않는다.
한글 금속활자로는 ‘동국정운’식 활자와 어조사 역할을 하는 연주활자(連鑄活字)도 출토됐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실물로 된 한글 금속활자’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세종 때의 찬란한 과학 문화를 증거하는 유물들도 대거 출토됐다. 항아리에서는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籌箭·물시계 외 시보를 연결)으로 보이는 동(구리)제품들이 잘게 잘린 상태로 나왔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 물시계의 시보(時報)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항아리 옆에서 나온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낮에는 해시계로 쓰고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재는 천문시계의 일종이다. 세종은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조선은 가히 시계의 왕국이었다”며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세종대 과학기술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라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소형화기인 총통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 등 총 8점이 출토됐다. 완형의 총통을 고의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보인다. 연꽃 봉오리 무늬 등으로 미뤄 왕실 발원 양식으로 보이는 동종도 작은 파편으로 나뉘어 출토됐다.
이번에 발굴된 유물은 만력(萬曆) 무자(戊子)년 소승자총통(1588년)이 함께 발굴된 점에 미뤄볼 때 1588년 이후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오경택 원장은 “재질이 모두 동으로 돼 있다. 동은 조선시대 아주 비싼 금속이었던 만큼 16세기에 전란을 피해 도망가며 급히 묻었다가 다시 꺼내지 못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임진왜란이 있었던 16세기 유적을 발굴하면 항아리 등에 고철이나 제기 등을 묻어둔 유물이 발굴되곤 한다. 공평구역은 조선시대 관청 건물이 있던 곳이 아니라 종로(운종가)의 시전과 관련된 중인 등이 거주한 지역으로 전해진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