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가 3900만명에 달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이 다음달부터 4세대로 바뀐다. 보험료 할증 방식 도입으로 출시 전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가입자의 건강 상태, 의료 이용 성향 등에 따라 유불리가 분명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병원에 자주 가지 않고 기존 1~2세대의 높은 보험료가 부담스럽다면 4세대로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는 평이 나온다. 유병력자·노약자나 평소 비급여 치료를 많이 이용하는 경우 상대적으로 보장 범위가 넓고 자기부담 비율이 낮은 기존 실손보험을 유지하는 게 낫다.
29일 금융위원회는 7월부터 손해보험사 10곳과 생명보험사 5곳이 4세대 실손보험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일부터 신규 가입할 수 있고, 기존 1~3세대 가입자들도 4세대로 전환 가능하다.
가장 주목받는 내용은 비급여 의료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가 할인·할증되는 구조다. 1년간 비급여 보험금을 타지 않으면 보험료가 5% 가량 할인되지만, 300만원 이상 받으면 최대 4배(300% 할증)로 오른다. 3세대 기준 보험료 할인 대상자는 72.9%, 할증 대상자는 1.8%다.
보험금 지급 이력은 1년마다 초기화된다. 예를 들어 올해 비급여 보험금을 100만원 이상 타가면 내년에 보험료가 할증되지만, 내년에 무사고일 경우 내후년에는 할인 대상자로 바뀐다. 또 보험료 전체가 아닌 비급여 특약 보험료만 할증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날 “지난해 4세대 도입 발표 이후 300% 할증 부분만 강조되고 할인 부분은 주목받지 못한 면이 있다”며 “보험금 청구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2030세대의 경우 4세대 전환이 나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4세대 실손보험료는 기존보다 최대 70% 낮아질 수 있다. 40대 남성 기준 6월 현재 1세대 보험료는 4만749원, 2세대 2만4738원, 3세대 1만3326원이고, 4세대는 1만1982원으로 예상된다.
4세대가 도입된 계기는 과잉 진료를 하는 ‘블랙 컨슈머(악성 소비자)’ 탓에 기존 실손보험의 손해율(보험료 대비 보험금 지급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손해율이 높아질수록 보험사 적자 규모가 커지고, 보험료는 인상될 수 있다. 다수의 선량한 가입자들은 보험료 상승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구조다.
4세대 실손보험의 막판 변수는 3세대에 적용된 할인율이 그대로 이어질 수 있는지다.
2019년 말 실손보험료 두자리수 인상이 예고되자 보험사들은 자율적으로 ‘안정화 할인 특약’을 도입, 3세대 보험료를 9%대 가량 낮췄다. 그로부터 1년 뒤 3세대 보험료가 동결되면서 할인율도 유지됐다.
최근 금융위는 해당 특약을 4세대 상품에도 적용하라고 업계에 요청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은 이미 ‘적자 상품’인데 할인을 또 적용하면 중소형 보험사는 적잖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대형 보험사들도 할인율 연장을 계기로 실손보험 심사를 강화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생보사들은 줄줄이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고 있다. 올해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에 이어 ABL생명도 4세대 상품을 출시하지 않기로 했다. 3세대 상품은 이달까지만 판매한다. 4세대를 판매할 예정인 생보사는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NH농협생명, 흥국생명 5곳에 불과하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