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술과 함께 사라진 친구들

입력 2021-06-30 04:06

문인들과 모여 술에 대한 산문을 쓰기로 했다. 책으로도 출판될 예정이라서 원고를 마감해야 하는데 나는 마감일만 떠올리면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이유는 내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었다. 출판 제의를 받고 원고를 계약하던 당시만 해도 술을 굉장히 좋아했었다.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아침까지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몹쓸 승부욕 때문에 문인들과 술 마시는 자리에 가면 시인의 명예를 걸고서 끝까지 살아남곤 했었다.

그랬던 내가 술이 약해졌다. 평소 과일주스라고 부르던 와인 한 잔에도 취한다. 소주나 막걸리는 냄새만 맡아도 취해버린다. 혹시 내 몸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 병원에 가봤더니 건강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정신적 문제 같았다. 내가 술이 약해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봤더니 시인으로 등단하면서부터였다. 술이 약하지 않으면서 등단작 제목에다 떡하니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라고 쓰면서부터였다. 등단 이후에 만난 사람들은 나를 술이 약한 사람 취급했고,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 나는 실제로 점점 술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술을 즐기지 못하니 원고에 쓸 이야기가 없었다. 주제를 잡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술이 약해지게 된 계기와 그로 인해 달라진 삶에 대해 적기로 했다. 오히려 술을 즐기던 때보다 쓸 이야기가 다양해졌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원고 문제는 해결됐지만 술을 마시지 않으니 친구들과 멀어졌다. 이제 나는 친구가 없다. 친구가 없어 외로워질 줄 알았는데 그 반대가 돼버렸다. 텅 비어버린 시간에 많은 책을 읽게 됐고, 평소 배우고 싶었던 언어까지 공부하게 됐다. 심지어 공부에 재미가 붙어 서른이 넘은 나이임에도 다시 대학에 갈 준비까지 하게 됐다. 나의 내면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삶에 대한 만족도가 한층 높아졌다. 앞으로 다시 술을 좋아하게 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