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문화에 과도한 근로시간… 꿈의 직장 ‘네카라쿠’의 민낯

입력 2021-06-29 04:01
네이버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동료 사망사건과 관련한 최종 조사보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로 불리는 국내 IT(정보기술) 대기업을 바라보는 20, 30대 취업준비생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일하기 좋은 곳으로 꼽혔던 이들 기업마저 ‘갑질 문화’와 ‘과도한 근로시간 강요’ 등으로 논란이 일자 그간 수면 아래에 있던 부조리가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최근 쿠팡 본사 사무직 직원들의 근로시간 규정 위반 신고가 고용노동부에 3건 접수됐다가 취소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이들은 처음엔 회사가 주52시간을 초과해 근로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통상 근로시간 규정 위반은 노동조합이나 인사부서 등을 통해 시정을 요구하는데 고용부에 접수된 것은 이례적이다. 문제를 제기해도 회사 시스템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직원들은 실명 조사에 부담을 느껴 이 신고 접수마저 취소했다.

규정 위반에 대한 지적은 내부 목소리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된다. 쿠팡 본사 직원 A씨는 지난주 80시간 가까이 근무했다.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최근 쿠팡의 한 부서가 ‘당직 제도’를 도입했는데 비상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또 다른 직원 B씨는 “퇴근과 주말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며 “회사는 ‘나중에 다 보상해주겠다’고 하지만 ‘나중’은 없을 것 같다.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연하고 수평적인 ‘젊은 조직’으로 주목 받았던 IT 대기업들의 민낯은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기업 내부에서 문제가 곪아 터지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앞서 네이버와 카카오 역시 근무 시간을 실제보다 적게 입력하게 하는 등 ‘주 52시간 꼼수’가 외부로 알려져 노동청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는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한 네이버 직원은 “대부분 직원이 주 52시간 이상 일하고, 그렇지 않으면 개인 면담을 하는 곳도 있다”며 “야근을 했다는 기록조차 남기지는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급속히 커지는 과정에서 내부 시스템은 스타트업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서 형성됐다. 최근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손꼽히는 게임회사 ‘크래프톤’에서는 한 임원이 “회사를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며 직원들에게 야근을 강요했다는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국내 IT기업들은 단기간에 압축 성장했기 때문에 체계적인 조직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은 이날 경기도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인혁 네이버 경영 리더와 가해 임원의 해임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네이버는 직원 한 명이 지난달 25일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가해 임원 2명 중 1명만 해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