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순간’ 노리는 최재형… 여당은 “배신자” “쿠데타” 파상공세

입력 2021-06-29 04:03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지막 퇴근길을 보냈다. 사의를 표명한 최 감사원장은 임기 6개월을 남기고 감사원을 떠나게 됐다. 연합뉴스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전격 사표를 던지면서 ‘대선 링’ 위로 등판을 예고했다. ‘별의 순간’을 잡기 위해 낮은 인지도와 허약한 정치 기반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지만, 최 원장이 ‘정치적 중립성’ 문제에 발목이 잡히면서 당분간 잠행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 원장 사퇴에 문재인 대통령은 불쾌감을 드러냈고, 여당도 “배신자”라며 파상공세를 펼쳤다.

최 원장은 이날 감사원 출근길에 사의를 밝히면서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입문 시기에는 “오늘 사의를 표명하는 마당에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엔 “차차 말씀드리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문 대통령이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라며 공직기관장의 중도 사퇴와 관련해 강도 높은 유감의 뜻을 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최 원장에 대한 실망이 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임기가 6개월가량 남은 최 원장이 스스로 자리를 내놓은 자체가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다만 최 원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명분으로 사퇴한 만큼 당분간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잠행을 이어가면서 정치 스케줄 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별의 순간’을 노리는 최 원장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최근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급상승했지만 여전히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체재가 아니라 ‘정치인 최재형’으로서의 대중적 인지도를 쌓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관으로 평생을 살아온 최 원장은 정치적 기반이 전무하고, 출발 역시 경쟁 주자들에 비해 늦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분권형 개헌론’을 내걸고 야권 내 지지세력 확보에 나설 수 있다. 분권형 개헌론자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이날 “대한민국이 자유민주공화국으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하는 상황에서 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최 원장을 평가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개헌을 연결고리로 최 원장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최 원장이 윤 전 총장보다 빠른 국민의힘 입당을 통해 당내 지지 기반 우선 확보를 노릴 수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8월 말 경선 버스 출발론’을 강조하는 만큼 최 원장의 입당이 늦어도 8월 중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최 원장이 사실상 대권 행보에 나서자 거칠게 비난했다. 송영길 대표는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등장한 전두환정부에서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가 된 분”이라며 “민주화 인사에 대해 판사로서 단 한 번의 양심적 판결이나 발언을 했는지 찾아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광재 의원은 “탱크만 동원하지 않았지 군사 쿠데타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정청래 의원도 “배신의 계절인가, 독립운동하다가 독립운동 노선이 맞지 않는다고 곧바로 친일파가 되면 되겠느냐”며 최 원장을 ‘배신자’로 규정했다.

여권이 ‘배신자’ ‘쿠데타’ 등 격한 표현을 동원해 공세를 퍼붓는 건 최 원장에 정치적 타격을 입히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2006년 11월 고건 전 국무총리는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 ‘실패한 인사’로 규정되면서 동력을 급상실했다. 결국 공세를 버티지 못한 고 전 총리는 대선판에 본격 나서지도 못한 채 2007년 1월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상헌 박세환 이가현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