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주도권 쥔 경찰, ‘제식구 감싸기’ 검사비리 뿌리뽑을까

입력 2021-06-29 00:04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 25일 검찰 중간 간부 인사를 단행한 뒤 이날 일부 검사들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검찰 안팎에서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추가로 검찰을 떠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합뉴스

현직 부장검사가 수산업자로부터 부적절한 금품을 받은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해당 검사의 사무실과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그간 검사비리 의혹이 있을 때마다 수사 주체를 놓고 ‘사건 가로채기’ 논란이 빚어졌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현 상황에선 경찰이 수사 주도권을 쥔 모양새다. 특히 이번 수사에 나선 경찰관은 영화 ‘베테랑’에서 배우 황정민이 연기한 열혈 형사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지난 23일 서울남부지검 소속이던 A부장검사의 사무실과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은 이와 관련, 총경급 경찰 간부에 대해서도 내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앞서 사기 및 횡령 등 혐의로 조사하던 한 수산업자에게서 “현직 부장검사 A씨와 총경급 경찰 간부 B씨 등과 친분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금융거래 내역을 살폈던 것으로 전해졌다.

A부장검사는 지난 25일 법무부가 단행한 검찰 중간간부 인사 결과 지방 지청의 부부장검사로 강등됐다. 법조계는 이 부장검사가 경찰 수사선상에 올라 강제수사를 받은 사실이 인사에도 반영됐을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빚던 과거의 사건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 부장검사에 대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은 검찰 단계에서 반려되지 않았고, 보완수사 요구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의 검사 사무실 압수수색 자체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가능해진 새 풍경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해 경북 지방의 한 지청에서 압수수색을 벌인 일이 있었지만 장소가 검사실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검사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처음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은 의미를 둘 사안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수사권 조정 이후 달라진 경찰의 위상을 확인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압수수색에 관여한 경찰관의 면면도 이 같은 기대감을 높인다. 이번 수사는 영화 ‘베테랑’ 속 열혈 형사 역할의 실제 모델이던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소속의 한 형사가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형사는 강력범죄수사대 조직 개편 이전인 광역수사대 시절부터 근무해 해당 부서 경력이 10년을 넘는다고 한다. 경찰에서는 “이제는 검사라도 위법 행위를 하면 경찰의 강제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검사비리 의혹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경찰에서는 “검찰이 ‘사건 가로채기’를 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을 검찰이 반려하거나 특임검사를 임명하는 방식으로 수사 주도권을 쥔다는 것이었다. 2012년 ‘조희팔 측근’에게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유죄가 선고됐던 김광준 전 부장검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결과적으로 김 전 부장검사에게 징역 7년의 중형이 확정됐지만, 당시 검찰은 특임검사를 임명해 이 사건 수사의 키를 쥐었다. 경찰은 ‘수사 가로채기’라며 반발했고 이 사건은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 거론됐었다.

법조계는 경찰의 검사비리 직접수사가 어떤 결과로 제시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아무래도 수사권 조정 이후 검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건 처음이다 보니 이번 사건을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