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옮겨갈 여건 만들고 균형발전 단계별 전략 세워야” [이슈&탐사]

입력 2021-06-29 04:02
역대 정부의 국가 균형발전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사이 지방 소멸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사진은 대학이 폐교되고 젊은 인구가 계속 빠져나가며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전북 남원시의 지난해 8월 모습. 남원=윤성호 기자

지난 23일 국회 대정부 질문 시간. 단상에 선 김부겸 국무총리를 향해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국가균형발전의 미흡함에 대한 지적이었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장에서 느끼는 지방 소멸 상황은 훨씬 심각한데 정부 대응은 대단히 느긋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일보 ‘144조 균형발전예산 대해부’ 시리즈 1회 기사(6월 14일자 1·3면)에 보도된 성경륭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의 진단을 인용하고 “‘균형발전 정책과 제도가 형태만 남았다’는 평가는 굉장히 혹독하고 뼈아프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윤덕 의원도 “국토 면적의 12%인 수도권에 인구 절반 이상이 모여 산다”며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책임을 미루는 데 그치고 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2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형발전예산)가 정작 수도권 지하철과 도로를 만드는 데 쓰였다”고 지적했다. 김 총리는 “수도권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 의회 구조가 문제다. 실질적 권한은 국회가 쥐고 있지 않으냐”고 맞받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취재팀이 해법을 듣기 위해 만난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다양했다. ‘재정 투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부터 ‘차라리 균형발전예산을 없애자’는 의견까지 온도차가 뚜렷했다. 다만 이들은 “당장 변화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취재팀은 시리즈 1회 기사에서 수도권에 투입되는 균형발전예산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특히 서울 지역 예산이 2008년 361억원에서 올해 2267억원으로 527% 급증한 점을 지적했다.

지방에 더 많은 예산을 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한국지방행정학회장을 지낸 김재훈 서울과학기술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 인구 감소를 돈으로 막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말 균형발전이 1순위라면 10조원이 아니라 20조원, 100조원을 투자해야겠죠. 하지만 소멸되는 곳에 돈을 쏟아붓는 게 바람직한가, 얼마를 쏟아부으면 그 지역이 더 좋아질까. 그러다 보면 ‘균형발전을 꼭 해야 하느냐’ 지점까지 논쟁이 이어질 수 있어요. 다른 곳에서 세금을 걷어 지역에 쓰는 일에 전 국민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돈보다 사람이 갈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균형발전에 오래 관여해 온 한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지방에 계속 예산을 써도 상황은 악화하고 있어요. 결국 사람이 가고, 기업이 가야 해요. 하지만 교육도 일자리도 다 수도권에 있어요. 현실적으로 대치동에 살아야 서울대를 가니까 다들 대치동에 있으려고 하는 거죠.”

그렇다면 균형발전예산은 무용지물인 것일까. 시리즈 2회(6월 15일자 1·8면)와 3회(6월 17일자 10·11면)에서 지적한 ‘목적 없는 예산’ 편성 사례에는 해법이 엇갈렸다. 김재훈 교수는 “균형발전예산이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솔직하게 접근해야 그 다음에 대안이 나오는 거죠. 안 되는 걸 계속 붙잡고 있으면 해결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성경륭 전 위원장은 “균형발전예산 도입 취지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에 균형발전예산은 기존 예산 제도의 약점과 맹점을 넘어설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라도 도입 취지를 재점검해야 합니다.”

균형발전예산을 오래 연구해 온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책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예산이 어떤 기준으로 각 지역에 배분된 건지 명쾌하게 설명할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정부 부처와 지자체, 균형위가 다른 관점과 권한을 갖고 있어 중장기적인 철학과 별 상관없이 운영돼 왔다”고 지적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도 “균형발전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단계별 전략이 없다면 (예산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포퓰리즘에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 소멸’에 대한 비관적 인식을 바꾸는 것도 관건이다. 균형발전을 연구하는 학자들마저 “지역 간 격차를 완전히 해소할 방법을 찾는다면 노벨경제학상 감”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할 정도다.

더불어민주당 국가균형발전·행정수도추진단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태스크포스(TF) 결과 보고서’에서 “전문가들까지 ‘지역 불균형은 이제 되돌리기 힘든 수준’이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본다”고 지적했다. 균형발전을 주도해야 할 사람들마저 비관론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TF는 보고서에서 ‘균형발전예산 개편’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17개 시·도 및 226개 기초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균형발전총괄지표’를 만들어 예산 편성에 활용하고 균형발전 정책을 전담할 ‘균형발전분권부’를 신설하는 방안도 내놨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지역일자리팀 부연구위원은 “양질의 일자리 제공과 교육·돌봄 지원, 문화 인프라 혁신 등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listen@kmib.co.kr

[이렇게 수도권 공화국이 됐다: 114조 균형발전 예산 대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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