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 초입에서 여의도 정치 경험이 전무한 ‘0선’ 대선 주자들의 대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민의 기존 정치권 불신과 반기득권 정서가 심화하면서 빚어진 현상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문재인정부의 요직을 거친 인사들이 핍박 끝에 야권의 유력한 주자로 변신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펼쳐지고 있다.
여야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한 번도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이 없다. 여권 지지율 1위인 이 지사는 변호사 출신으로 성남시장을 지냈고, 18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국회에는 입성하지 못했다. 윤 전 총장은 검사로, 최 원장은 판사로 대부분 경력을 쌓았다. 김 전 부총리도 정통 경제관료로 평생을 살았다. 결국 이들 모두 국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존 여의도 정치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0선’ 경력은 양날의 검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은 여의도 정치권과 거리를 둔 이들의 참신함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아마추어 같다” “준비가 덜 됐다”는 식의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1987년 민주화 이후 ‘0선’ 대통령이 나온 적은 없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경력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19대 의원을 지냈다. 과거에는 국회의원 경험이 대선 후보의 필수 경력이었다. 국회에서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정치적 경험치를 쌓는 게 필수 코스였다.
과거 문법과는 다르게 ‘0선’ 유력 대권 주자 돌풍이 부는 건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에서 기인한 탓이 크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27일 “국민이 정치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가지면서 생긴 현상”이라며 “중앙 정치무대가 계속 혼탁해지면서 국민의 믿음과 신뢰가 깨졌고, 국회의원보다 다른 경력을 쌓는 게 더 돋보이는 상황까지 됐다”고 진단했다. 정치 불신에 국회의원 경험을 대통령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국민이 이제는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낸 2030세대를 중심으로 기득권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도 ‘0선’ 대선 주자 약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불공정 문제에 불만이 많은 2030세대로선 자연스럽게 기득권 타파를 추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며 “기득권으로 인식되는 기존 정치권과는 거리를 둔 후보들이 대안으로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이라고 했다. 역시 ‘0선’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변화의 상징이 된 현상이 대선판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야권 주자로 인식되는 윤 전 총장과 최 원장, 김 전 부총리 모두 공교롭게 문재인정부에서 요직 중의 요직을 역임했고, 발탁될 때는 여권의 대환영을 받은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대립각을 세운 끝에 야권행이 사실상 확정됐거나 임박한 상태다.
윤 전 총장은 2019년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청와대 및 집권여당과 격한 갈등을 겪었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정면충돌 끝에 야권 대선 주자로 변신했다. 최 원장은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및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 문제, 김 전 부총리는 ‘소득주도 성장론’으로 여권 주류와 대립했다. 결국 이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여권의 폐쇄성에 핍박을 받으면서 이들이 변신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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