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의 ‘공룡’ 넷플릭스와 국내 통신사 SK브로드밴드의 분쟁은 2019년 말에 시작됐다. 인터넷망 사용료를 둘러싼 다툼이다.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급성장하면서 망 트래픽(데이터 전송량)이 폭증한 게 배경이다. 2018년 말 100만명에 불과했던 넷플릭스 국내 가입자는 1년 뒤 200만명을 넘어섰고, 관련 트래픽도 급증했다. 현재 가입자는 400만명으로 추정된다. 국내 트래픽 점유율도 구글(25.9%)에 이은 2위(4.8%)다. 하지만 국내 업체 네이버(1.8%) 카카오(1.4%)와 달리 넷플릭스는 망 사용료를 내지 않았다. 무임승차란 말이 나온 이유다. SK가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협상 중재를 요청하자 넷플릭스는 이를 거부하고 지난해 4월 법원에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 공방은 1년여간 진행됐다. 넷플릭스는 ‘망 중립성’ 원칙, 접속(유료)과 전송(무료) 개념을 들고 나왔다. 망 중립성은 통신사업자가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이다. 특정 서비스에 대해 망 사용료를 요구하는 것은 이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넷플릭스 주장이다. 또 한국 서비스는 일본에 있는 서버를 활용하는데 일본 통신사에 접속료를 냈기 때문에 일본에서 데이터를 받아오는 한국 통신사엔 전송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SK는 망 중립성은 차별 금지 취지일 뿐 무료 사용 의미는 아니며, 접속과 전송은 현행법상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반박했다. 이 소송은 향후 인터넷 생태계의 질서를 정립하는 이정표가 된다는 점에서 국내외 업계의 이목이 집중돼 왔다.
그 결과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은 어제 1심 선고 공판에서 SK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계약을 체결할지, 어떤 대가를 지불할 것인지는 당사자 협상에 따라 정해질 문제”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아울러 망 사용료 지급 의무가 있다고 명시적 판단을 한 만큼 SK가 협상의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은 분명하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의 무임승차가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