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중심지 유럽에서 축구 최강국을 가리기 위한 승부가 본격 시작된다. 유로2020 토너먼트 첫 단계인 16강부터 이름 높은 강호들이 연이어 격돌한다. 축구팬으로선 놓칠 수 없는 대결이 많다.
유로2020 참가국들은 23일(현지시간) E조와 F조 4경기를 마지막으로 조별리그 일정을 마감했다. 16강 토너먼트에 돌입하는 16개 대표팀과 대진도 확정됐다. 이들은 26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웨일스와 덴마크의 경기를 시작으로 29일까지 8강 진출팀을 가리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한국시간으로는 27일 새벽부터다.
조1위 뺏긴 스페인 ‘작은 이변’
조별리그 결과에서 눈에 띄는 이변은 없었다. 강팀 대부분은 마지막 순간 어떻게든 토너먼트 진출권을 확보했다. 24개 참가팀 중 16팀을 가리느라 조별 꼴찌와 3위 중 2개 팀만 탈락하는 구조여서 이변이 일어날 여지도 적었다. 이 같은 규칙 탓에 핀란드와 슬로바키아는 각각 조 3위를 차지하고도 간발의 차로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무적함대’ 스페인이 E조에서 스웨덴에게 1위 자리를 뺏긴 일이다. 스페인은 먼저 치른 슬로바키아전과 스웨덴전 모두 졸전 끝에 비겼다. 자국에서 치른 마지막 조별리그 경기에서 슬로바키아에게 5대 0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면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다.
가장 숨 막혔던 건 ‘죽음의 조’로 불린 F조다. 디펜딩챔피언 포르투갈과 2018년 러시아월드컵 우승팀 프랑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우승팀 독일이 동유럽 복병 헝가리와 묶여 결과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었다. 안정적인 전력으로 16강행을 일찍 확정한 프랑스와 달리 포르투갈과 독일은 마지막까지 순위표를 오르내리며 마음을 졸였다. 결국 강팀 셋이 모두 16강에 오르며 자존심을 챙겼다.
전문가들은 이들 사이에서 탈락한 헝가리가 조별리그에서 가장 돋보인 팀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록 2무 1패로 16강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경기력 면에서는 가장 돌이켜볼만한 팀이라는 평가다. 한준 해설위원은 “헝가리는 좌우 윙백을 역습에 공격적으로 활용하면서 좋은 경기를 보여줬다”면서 “이번 대회에서는 윙백 활용이 두드러지는데 이런 트렌드에 잘 부합했다”고 말했다.
‘유로의 왕’ 호날두, 그리고 추격자들
5년 전 같은 대회에서 독보적 활약으로 조국 포르투갈에 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선사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이번에도 조별리그 3경기 5골을 넣으며 득점력을 과시했다. 현재까지 이번 대회 득점 단독 선두다. 5골 중 필드골은 2골에 불과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페널티키커로 나서 팀을 구해낸 데서 볼 수 있듯 강심장 기질은 여전하다.
호날두에게 이번 대회는 17년 전인 2004년 유망주 시절부터 시작해 무려 다섯 번째 치르는 유로다. 호날두가 현재까지 기록한 유로 통산 14골은 역대 최다다. 프랑스의 전설적 공격수이자 유럽축구연맹(UEFA) 전 회장 미셸 플라티니가 넣은 9골을 한참 앞질렀다. 한준 위원은 “호날두는 이번 대회에서 어느 때보다 베테랑답고 이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페널티킥 자체도 스스로 유도해낸 게 많았다”고 설명했다.
호날두의 뒤를 쫓는 2위 그룹은 5명으로 각각 3골을 넣었다. 네덜란드 미드필더 조르지오 바이날둠을 제외한 전문 공격수는 4명이다. 이 중 세리에A 우승팀 인터밀란과 벨기에의 주전 공격수인 로멜루 루카쿠가 가장 기대를 받는다. 루카쿠는 세리에A에서도 호날두에게 득점왕 자리를 뺏긴 터라 대회 득점왕을 차지한다면 의미가 남다르다.
마지막에 누가 웃을까
호날두와 루카쿠의 대결은 당장 16강전에서 이어진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포르투갈은 2016년 대회 때보다 멤버 구성이 오히려 낫다. 역대 최고의 황금세대”라고 평가했다. 벨기에 역시 세계랭킹 1위답게 전력이 막강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꼽히는 케빈 더브라위너를 위시해 포지션별 구성이 알차다. 한준희 위원은 “둘 사이 대결에서는 벨기에가 결정력을 얼마나 살리느냐가 중요하다”며 “키플레이어는 루카쿠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잉글랜드와 독일의 만남은 16강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경기다. 둘은 세계 1·2차대전 등 현대사뿐 아니라 축구사에서도 숙적이다. 잉글랜드는 196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서독을 꺾고 우승했으나 이후 70년 월드컵, 72년 유로, 90년 월드컵, 96년 유로, 2010년 월드컵까지 주요 대회 토너먼트에서 독일을 만나 매번 탈락했다.
독일에게도 이번 대회는 의미가 깊다. 16년째 장기집권하며 세계 최강 전력을 쌓아 올린 요하임 뢰브 감독이 이번 대회를 끝으로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지난해 말 밝혀서다. 조별리그에서 보인 경기력이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가 많아 주특기인 토너먼트에서 선전할 것이랑 예상도 나온다. 반면 잉글랜드는 자국 리그 슈퍼스타들이 모였지만 조별리그에선 다소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선수들의 시너지를 얼마나 끌어낼지가 관건이다.
러시아월드컵 우승팀 프랑스는 조별리그에서도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포지션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를 보유한 덕에 딱히 약점이 없다. 비교적 수월한 상대인 스위스를 16강에서 꺾는다면 8강에서 스페인을 만날 확률이 높다. 또 다른 강호인 네덜란드와 스페인은 조별리그에서 경기력이 다소 불안정했다.
이번 대회를 포함해 네이션스리그, 카타르월드컵 예선 등 국가대항전에서 3년째 무패행진 중인 이탈리아도 빼놓을 수 없는 우승후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스타는 다른 강팀보다 부족하지만 팀으로선 가장 완성돼 있다고 평가받는다. 16강에서 오스트리아를 꺾는다면 벨기에와 포르투갈 경기의 승자와 8강에서 붙는다.
과거 손흥민의 팀 동료이자 에이스 크리스티안 에릭센을 잃은 덴마크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도 팬들의 관심사다. 덴마크는 조별리그에서 에릭센이 경기 도중 쓰러졌음에도 나머지 구성원이 분전해 16강행에 성공했다. 한준희 위원은 “에릭센이 빠지면서 덴마크가 전력에 큰 손실이 생긴 건 사실”이라면서도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신력으로 에릭센의 공백을 메운다면 의외의 선전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