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화’ 참지 못하고 시한폭탄 된 성격 복음으로 참 평강과 기쁨 알게 돼

입력 2021-06-28 03:09

아버지는 7남매의 셋째인 나만 괴롭혔다. 식사 때 수저 소리 낸다고, 밥상 앞에 양반다리 하지 않는다고, 문지방 밟고 들어온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말을 못하면 더듬는다고 야단을 치며 때리기까지 했다. 아버지 앞에선 고양이 앞에 쥐같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 중 1때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농약을 찾은 적도 있다. 고1때까지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고 많은 아이들 앞에서 해야 하는 음악 실기시험은 늘 빵점이었다.

중2때 아버지가 후두암으로 돌아가시니 눈물은커녕 솔직히 속으로 좋아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너무 행복해요’ 했는데 어머니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갑자기 분이 나면서 내가 지금 어떤 줄 아냐고, 주눅이 들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병신이라며 어머니께 화를 냈다. 이것이 분노 폭발의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빗나가기 시작했다. 집에 호랑이가 없으니 학교도 잘 안 가고, 불량한 애들이랑 어울렸다.

아버지의 도피처로 다닌 교회에서 중고등부 회장까지 했다. 예배 후엔 몇 명이 헌금 계산을 하고 얼마를 남겨 ‘뽀빠이’ 사 먹고, 복숭아밭 서리를 해 교회 옥상에다 숨겨 놓기도 했다. 성격은 점점 시한폭탄처럼 돼 갔고 운전할 때는 극에 달했다.

그러다 목사님의 권유로 신학교 진학을 결심하고 최선을 다했다. 어느 기도원에서 ‘개도 방언을 받는다’는 말에 희망을 갖고 기도했지만 결국 개만도 못한 사람이 됐다. 신앙의 갈급함은 채워지지 않아 신학교의 꿈을 접고 지방교회로 옮겨 더욱 열심히 했다. 그러나 화를 참을 수 없는 변화되지 않은 내 모습에 낙심만 됐다.

어느 날 아내가 한마음교회에 한 번 가보자고 했다. 목사님 말씀은 알아듣지 못하고 예배 후 모임에 참가했는데 대학생같은 청년이 말씀을 전했다. ‘지가 알면 얼마나 알아.’ 자리를 박차고 나온 후 교회와 담을 쌓았다. 그러다 지인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1년 만에 다시 교회를 찾아갔다. 대학생같은 그 형제님이 ‘미국을 가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있는 것을 믿느냐’며 그것을 믿는데 느낌이나 감정이 필요하냐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아, 이제 알겠다’는 탄성이 나왔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사도행전 말씀이 실제가 되며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섰다. 그러자 내가 주인 돼 분을 내며 예수님을 문밖에 세워 놓고 무시한 죄가 선명히 보였다.

‘저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아들을 업신 여기고 무시하고, 지옥 가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은혜인지 알게 됐다. 그러면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시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동 대표 모임에서 어느 분이 자신은 막연하게 믿었었다고 하길래 확실한 증거인 부활을 전했다. 아버지께 받은 상처로 인해 시선 공포증이 생긴 형제에게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들려주며 두 손을 꼭 잡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했다.

두려움에 책도 못 읽었던 내겐 모두가 기적 같은 일이다. 누가 차를 추월해도 기쁘게 양보하고 그동안 아내를 무척 힘들게 한 일이 떠올라 꼬박 하루를 울면서 회개하고 용서를 빌었다. 아내에게서 다시 신혼이 된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땐 눈물만 난다. 내가 주인 되어 분내고 원망하면서 시한폭탄처럼 살던 나에게 참 평강과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김학표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