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연령과 소재로 확장된 여성 서사

입력 2021-06-24 20:25
2012년부터 쓴 여덟 편의 단편을 묶은 첫 소설집 ‘우리가 쓴 것’을 출간한 조남주 작가.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가 다양한 연령대와 소재로 확장된다. 민음사 제공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의 첫 소설집 ‘우리가 쓴 것’이 출간됐다. 조남주의 소설집은 올해 문학시장 최대 기대작 중 하나로 꼽혀왔다.


2012년에 쓴 첫 단편 ‘미스 김은 알고 있다’부터 지난해 여름에 쓴 ‘첫사랑 2020’까지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2016년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페미니즘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이 됐다. 지금까지 130만부가 팔렸고, 27개국 25개 언어로 번역됐다. 일본에서도 2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리 급진적일 것도 과격할 것도 없는 소설은 너무 많은 말들에 휩싸였다.… 덕분에 많이 읽히고 팔렸던 것은 사실이다. 다시 더 많은 말들이 만들어졌고 또 팔렸고 또 말이 만들어졌던 일은 선순환이었는지 악순환이었는지 모르겠다.”

소설집에 실린 ‘오기’라는 제목의 자전적 작품에는 ‘82년생 김지영’ 출간 이후 벌어진 격렬한 논란을 통과하며 작가가 경험한 사건들과 심경이 그려져 있다.

“오빠”로 시작해 “이 개자식아!”로 끝나는 ‘현남 오빠에게’라는 작품은 10년 연애 후 청혼을 받은 여성이 청혼을 거절하며 남긴 편지다. 오빠가 모든 걸 결정하고 간섭하는 관계에 길든 여성이 “그동안 오빠가 나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 왔다는 것을,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자아이는 자라서’는 세대 간 젠더 의식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여성의 피해 고백을 의심하는 기성세대의 시각을 비판한다. 주인공은 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대학시절 페미니즘 모임을 이끌었지만 10대 딸이 교내 성희롱 사건에 연루되자 딸이 잘못한 게 아닌지 의심한다. “그러니까 엄마, 업데이트 좀 해.” 딸의 이 말은 386세대 부모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고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안다. 그렇다고 내가 느끼는 고통과 불합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말도 지금 젊은 세대의 감정을 정확히 드러낸다.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여성들의 이야기다.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게 된 조남주는 숱한 논란에도 움츠리지 않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더 밀어붙이기로 한 모양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가 이번 소설집에서 다양한 연령과 소재의 여성 이야기로 확장된다.

나이 든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오로라의 밤’과 ‘매화나무 아래’는 흥미로운 시도다. ‘오로라의 밤’은 쉰일곱의 여성이 캐나다 옐로나이프로 오로라를 보러 가는 얘기다. ‘매화나무 아래’의 주인공은 80대 노인이다.

“다음에, 다음에, 하는 동안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오로라의 밤’ 주인공은 손주를 봐달라는 딸의 부탁을 거절하고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러 여행을 떠난다. ‘할머니다움’이나 ‘어머니다움’을 거부하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다.

코로나19 속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첫사랑’은 누군가 꼭 해야 할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반갑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가정과 학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코로나로 커진 격차 문제에 대해, 이 격차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