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가족에 대한 익숙한 생각을 비틀기

입력 2021-06-24 20:29
2017년 장편 데뷔작 ‘아몬드’ 발표 후 쓴 단편들을 모은 첫 소설집 ‘타인의 집’을 선보인 손원평 작가. 소재와 형식에서 여러 실험들을 보여준다. 창비 제공

소설가 손원평(사진)의 2017년 데뷔작 ‘아몬드’는 강렬했다. 청소년문학을 넘어 폭넓게 독자들을 끌어들이며 80만부가 판매됐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15개국에서 번역 출간돼 ‘82년생 김지영’과 함께 ‘K문학’을 대표해왔다.

이번에 출간된 ‘타인의 집’은 손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지난 5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여덟 편을 묶었다. 한 편 한 편 읽어가다 보면 2020년대도 손원평의 시대가 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소설집 제목이 된 ‘타인의 집’이란 단편은 전세 세입자에게 다시 월세로 세 들어 사는 청년들의 이야기다. 각각 방 한 칸을 월세로 사는 세 여성과 전세로 얻은 아파트의 방들을 월세로 다 내주고 자신은 거실과 베란다에 기거하는 한 남성이 등장한다.

그 작은 방과 취약한 소유 관계에서도 자본주의는 맹렬하게 작동한다. “아시죠, 자본주의”란 말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가운데 청년세대의 불안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리아드네 정원’은 유일한 SF소설이다. 노인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노인 수용 시설인 ‘유닛’ 내부의 모습을 그리는데, 지금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얘기로 보이지 않는다. AI(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유닛은 경제력에 의해 등급화돼 있고, 이곳에서 보내는 노년의 삶이란 다음 단계로 하락을 기다리는 것에 불과하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세대 갈등, 이민 논란 등이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이 시대의 노인들이야말로 가장 많은 걸 누린 사람들이란 건 분명해요” “후대를 위해 쓰여야 될 세금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버려지고 있잖아요” 같은 말을 쏟아내는 젊은이들의 분노야말로 노인 시대의 폭탄이 될지 모른다.

“나는 상자 속에 산다”는 말로 시작되는 ‘상자 속의 남자’는 ‘아몬드’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형의 사고 이후 “절대로, 절대로 나와 상관없는 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신조를 갖고 살아가는 택배기사 청년이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용기를 발견하는 이야기다. 스스로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 상자 속으로 들어가 굳어진 어른들의 마음을 안쓰럽게 인정하면서도 쓰러진 사람을 도와주고 휭 사라져버리는 소녀를 등장시켜 그 굳어진 마음을 다시 펴게 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선 소설가를 꿈꾸는 여고생 보라의 말을 통해 작가의 문학론을 슬쩍 드러낸다.

“결국 자신이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삶 그 자체 때문이었다. 죽음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이어지고야 마는 삶. 어둠을 갈라내는 빛. 보라가 가진 힘은 불행을 연료 삼지 않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데 있었다.”

‘괴물들’과 ‘zip’은 중년 여성을 내세워 집과 가족에 대한 엄마·아내의 어둡고 낯선 생각을 보여준다. ‘괴물들’의 주인공 여자는 그토록 열망했던 아이들을 괴물처럼 여기게 된다. 출산과 육아는 지나치게 힘들었고, 아이들은 엄마를 이용했다. 그래도 살기 위해 “아이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느낀다.

‘zip’의 주인공 영화는 집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결혼을 통해 새로운 집을 찾았으나 그 집도 안식처가 돼주진 못했다. 그녀는 또 탈출을 꿈꾼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속였고 식물인간이 돼 병원에 누워버린 남편이 있는 집을 지켜나간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