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성 김 앞에 두고 “꿈보다 해몽” 조롱… 북·미 수싸움 돌입

입력 2021-06-23 04:03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성 김(가운데)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접견하기 전 로버트 랩슨 주한 미국대사 대리와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조건 없는’ 북·미 대화 재개를 촉구한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코앞에 두고 미국을 향해 “꿈보다 해몽”이라며 비아냥댔다.

김 부부장은 2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문에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우리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이번에 천명한 대미 입장을 ‘흥미로운 신호’로 간주하고 있다고 발언했다는 보도를 들었다”며 “이는 잘못된 기대”라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이 대미 담화를 낸 것은 약 2개월 만이다.


김 부부장은 “조선 속담에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은 아마도 스스로를 위안하는 쪽으로 해몽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조롱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앞서 ABC방송 인터뷰에서 ‘대화’와 ‘대결’을 동시에 강조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미 메시지를 “흥미로운 신호”라고 평가하며 북한이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김 부부장이 대미 담화문을 낸 것은 올해 초 오빠 김 위원장이 북·미 대화 재개 선결 조건으로 내세웠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가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데 불만을 나타내면서 대북정책 기조 전환을 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지난 21일 한·미·일 수석대표 협의 모두발언에서 북·미 대화 재개를 촉구하면서도 ‘대화 전 제재 해제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부부장이 대미 담화로 북·미 대화 재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원고지 1매 미만 분량의 담화문에서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며 수위 조절을 했다는 시각도 많다. 이번 담화가 북·미 대화에 판을 깨는 것이라기보다는 협상용이라는 얘기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조건 없이 만나자’는 미국에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라며 잽을 날리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미국이 조금 더 구체적인 제안을 해 달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에 앞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양측 간 치열한 기싸움이 한동안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최고존엄’인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대화를 준비할 것을 지시했는데, 미국이 이를 “흥미롭다”고 평가하자 대미 문제를 총괄하는 김 부부장이 직접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