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1981년~2000년대 초 출생)는 정치·사회·문화 각 분야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는 청년층이다. 동시에 이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구직난에 내몰린 취약계층으로 불린다. 장래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갈 MZ세대 상당수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면서 가까스로 취업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더 좁아진 취업문을 뚫지 못해 취업 포기 상태에 이른 경우도 많다. 국민일보는 MZ세대 인터뷰와 통계청의 고용동향 자료 분석을 통해 청년들이 처한 현실과 일자리 관련 정책의 한계를 짚어봤다.
일자리 급감·생계난 ‘이중고’
1989년생 박현성(가명)씨는 2016년 전역 후 5년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법과대학을 다니면서 수차례 사법시험에 응시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6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로스쿨에 다시 도전했지만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지방에서 뒷바라지를 해주던 부모님은 전화기 너머로 “더 이상은 지원이 어렵겠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박씨가 취업 준비를 더 서두르게 된 건 2018년이었다. 서른 살을 코앞에 두고 절박한 마음에 청년지원 정책을 찾아보다가 정부에서 운영하는 ‘취업성공패키지’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취업 상담과 일자리 알선, 훈련수당 지급을 해주는 제도였지만 박씨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대부분 중소기업을 추천받았고 마음에 드는 일자리도 없었다”고 말했다.
취업 문턱까지 간 적도 몇 번 손에 꼽힌다. 그러나 면접 때마다 “나이가 많은데 지금까지 뭘 했느냐”는 압박 질문에 번번이 발목을 잡혔다. 그는 2년 전부터 스터디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매달 50만~60만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23일 “지금이라도 공무원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진로를 찾아야 하는 건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김연희(가명·31)씨는 지난 1월 부모님이 사는 충북 청주로 내려갔다. 김씨는 혼자 사는 청년이나 장년층에게 ‘자기 삶을 더 잘 사는 법’을 주제로 강연하는 프리랜서 강사로 일했다. 하지만 취업난에 생활고까지 겹쳐 낙향했다. 김씨는 “잠깐만 부모님 신세를 지려고 내려갔는데…”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전의 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2017년 2월 서울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5인 미만의 소규모 기업에 취업했다가 3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계약서에는 ‘연구개발’이 김씨 업무였지만 이와 무관한 일을 지시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중소기업 경력을 ‘물 경력’이라고들 하는데 청년들이 이런 기업에 가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털어놨다.
취준생 딱지 뗄 기약 없는 MZ세대
최연수(가명·26)씨는 학부 졸업을 2년 미룬 끝에 지난 2월 뒤늦은 졸업식을 치렀다. 대학생 신분을 되도록 오래 유지하는 게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최씨는 서울의 한 언론사 인턴기자로 일하면서 ‘스펙’을 쌓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취업 경쟁이 워낙 치열해 웬만한 스펙은 내세울 수도 없는 데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채용 규모는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가능한 한 빨리 취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더 이상 하지 않고 취업 준비에만 ‘올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최씨는 “그간 모은 돈으로 버티면서 이력서를 써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잡지사 에디터로 일했던 문성환(가명·31)씨는 지난해 11월 실직 후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까지는 매달 160만원씩 나오는 실업급여로 어느 정도 버텼지만 실업급여가 끝난 뒤로는 그간 모은 돈이 예상보다 빨리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문씨는 도움받을 수 있는 청년지원책을 알아봤는데 ‘실업급여를 받은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야 지원 대상이 된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생활고에 허덕이게 된 문씨는 예전에 했던 임상시험 아르바이트를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그는 “임상알바 모집 문자가 계속 오는데 이거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여자친구 반대로 못하고는 있지만 돈은 떨어지고 취업은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오력’ 부족?… 목숨 걸고 있다”
“사실 취업을 위해 노력을 제일 많이 하고 있는 세대 아닌가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점 관리, 각종 자격증 준비에 목숨을 걸잖아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위해 휴학한 곽혜수(가명·23)씨는 ‘MZ세대는 눈만 높고 노력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곽씨는 또 “자꾸 학생들에게 극복하라고 하기보다는 청년지원 정책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6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조현우(가명·30)씨는 “알바만 하는 생활을 계속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청년지원 강화 요구를 두고 욕심들 부린다고 하겠지만 청년들이 평생 알바만 하는 사회가 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슈&탐사1팀 김경택 문동성 구자창 박세원 기자 ptyx@kmib.co.kr
[MZ세대, 벼랑 끝 청년노동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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