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3학년 아인이가 “학교에서 동물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판다를 키우고 싶어요”라고 운을 떼자 5학년 한결이가 한술 더 뜬다. “나는 (영화) 알라딘에 나오는 호랑이, 아빠 건강 때문에 집에서는 동물 못 키워.” 그러자 학생들이 저마다 키우고 싶은 동물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펭귄 먹이 주고 싶어요.” “토끼요.” “나는 호랑이 사자같이 사나운 애들 빼고.” “그런 동물 (학교에서 키우기) 힘들어, 고양이 좋아.”
아이들의 다소 엉뚱해 보이는 제안은 동물에서 놀이시설로 이어졌다. 쉬는 시간 교실에서 운동장 놀이터로 직행할 수 있는 짚라인, 지금 1개뿐인 놀이터를 4∼5개 늘리고 놀이터 사이를 오가는 작은 기차, 워터파크 아니면 수영장에 물 미끄럼틀이라도…. 워터파크를 요구한 3학년 성연이는 코로나19 전인 1학년 때 갔던 워터파크에 얽힌 추억을 말했다. 한 학년 위의 형이 “워터파크는 좀 심해, 수영장에 물 미끄럼틀 어때”라고 제안하자 성연이는 수긍했다.
지난 16일 서울 노원구 소재 노원초등학교에서 진행된 학생 집단 인터뷰 모습이다. 교육부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에 선정된 이 학교는 현재 ‘사전기획 단계’를 진행하고 있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은 2025년까지 18조5000억원을 투입해 40년 이상 노후 학교들을 미래형 교수·학습 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이다. 저탄소·친환경(그린), 미래형 학습 공간(스마트 교실), 마을 공동체형 학교(복합화), 학생 등 수요자 중심 공간 설계(공간혁신)를 지향한다.
사전기획은 이런 개념들을 학교에 구현하기 위해 본격적인 설계에 앞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다. 과거 학교시설 개선 사업에선 요식 절차에 불과했던 구성원 의견 수렴 작업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에서는 미래교육과 교육 공동체 발전의 핵심 요소로 여긴다. 노원초는 이달 초 학생과 학부모 대상 온·오프라인 중간 보고회를 열었으며 의견 취합이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인터뷰는 사전기획에 참여한 3~6학년 15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특별한 학교를 상상하며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학교 텃밭에서 키운 것으로 보이는 상추를 들고 온 5학년 승리는 학교 정원이 만들어지면 대나무를 키울 계획이라고 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승리는 우연히 대나무숲을 카메라에 담은 뒤 대나무에 빠졌다고 했다. 승리는 “대나무는 좋은 소리를 낸다. 그리고 뭔가 단단한 느낌이 좋다. 학생마다 좋아하는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작은 개인 식물원이 필요해요”라고 했다.
4학년 연두는 학교 건물을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 바깥쪽은 1~6학년 교실을, 안쪽은 조리실·음악실·미술실·도서관 등을 배치하는 그림을 그렸다. 같은 학년 시윤이는 육각형을 제안했다. 한 면당 1개 학년이 쓰자는 구상인데 두 학생 다 이런 구조가 학생들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 편의성을 높인다고 강조했다.
6학년 영서는 교실 공간을 넉넉히 만든 뒤 놀이공간과 수업공간을 아치형 통로로 분리하는 방안을 내놨다. 쉬는 시간에 운동장으로 나가 놀기에 불편하니 교실마다 작은 놀이공간을 두면 비가 오거나 미세먼지가 심하더라도 학교가 즐거울 것이라고 했다.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야외 공간과 도서관, 조리실 증축 같은 손에 잡히는 제안도 상당수 나왔다.
5학년 승리의 어머니 황은혜씨는 “노원초는 제 모교이기도 하다. 수락산과 중랑천이 있는 환경에서 키우려고 마포에서 이사왔다. 교실 안에서 교과서만 배우는 게 아닌 자연에서 배움이 이뤄지는 학교를 원한다”고 말했다.
노원초 사전기획을 담당하는 정해완 교사는 “(의견 수렴을) 4, 5학년 주도로 했는데 사실 이 아이들은 새 학교를 못 보고 졸업한다. 아이들도 안다. 그런데도 열심히 아이디어 내고 논의하는 건 그만큼 새로운 학교나 공간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이라며 “예산이 불투명해 아이들 요구가 얼마나 충족될지 모르나 적어도 놀이터 있는 둘레길과 중앙정원, 작은 시냇물은 조성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미래교육 대전환 프로젝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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