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유럽에서 일상이 조금씩 회복되자 다시 아프리카 난민들의 이주가 폭증하고 있다. 사하라사막 남쪽 지역에서 살기 위해 탈출한 난민들은 200㎞가 넘는 망망대해를 고무보트 하나로 스페인령 북아프리카로 항해하고, 심지어 수㎞를 헤엄쳐 가다 사망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견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0일(현지시간) 스페인 해안경비대가 카나리아제도 남쪽 61.1㎞ 해상에서 아프리카계 난민 45명을 구조했다고 보도했다. 여성 24명과 미성년자 8명이 포함된 난민들은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사고도 빈번하다. 스페인 일간 ABC에 따르면 지난 18일 카나리아제도 북쪽에서 고무보트가 뒤집힌 채 발견됐다. 이 사고로 38명이 구조됐지만 최소 3명이 숨졌다. 이들 역시 사하라사막 남쪽에서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항구를 불과 600m 남겨둔 지점에서 배가 뒤집혀 봉변을 당했다.
아프리카계 난민들이 카나리아제도를 찾는 이유는 이곳이 북아프리카에서 쉽게 닿을 수 있는 유럽 국가의 영토이기 때문이다. 카나리아제도는 유럽이 아닌 북아프리카 근처 대서양 해상에 있다. 아프리카계 난민들은 모로코 남쪽까지 온 뒤 고무보트 등을 타고 서쪽으로 270여㎞를 항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일간 엘 문도는 “아프리카계 난민들이 다시 ‘죽음의 항해’를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아프리카계 난민들이 목숨 건 항해를 하는 이유로 꼽힌다. 엘 문도는 “북아프리카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관광업뿐 아니라 모든 인프라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면서 “아프리카에는 백신을 포함해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평균 백신 접종률은 2.3%에 불과하다.
아프리카계 난민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올해 들어 카나리아제도로 들어온 아프리카 난민은 5700명 규모다. 지난해에 비해서는 배 이상 늘었고, 코로나19 발병 직전인 2019년에 비해서는 8배 이상 폭증한 수치다. 지난달에는 모로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스페인령 세우타에 난민 5000여명이 한꺼번에 유입되기도 했다.
난민이 급증하면서 스페인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현지 언론은 정부가 지난 4월부터 캠프를 세워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지만 코로나19 검사부터 음식과 샤워 등 기초적인 대우가 부족하다고 전했다.
범죄 조직이 판치는 것도 골칫거리다. ABC는 “난민들에게 2000유로(270만여원)를 받고 캠프 수용 없이 본토에 데려다주는 청부업자들을 검거하는 것도 정부를 곤란하게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스페인 이민부 대변인은 “문서를 갖추지 않은 이주민을 위한 센터는 유럽 표준을 충족하고 있고 코로나19 검사 구역도 충분히 마련돼 있다”고 밝혔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