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키 두 배는 족히 넘을 높이였다. 허공으로 높이 날아오른 윤지원(15)군의 오른발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송판을 갈랐다. 한 달 전부터 준비한 무대의 마지막 발차기였다. 뒤로 공중제비를 넘은 윤군이 날렵한 자세로 착지하자 함께한 단원들의 우렁찬 기합 소리가 이어졌다.
남북 간 스포츠 교류마저 막힌 코로나19 시대에도 태권도 꿈나무들의 함성은 어김없이 철책선 앞에 울려 퍼졌다. 국민일보와 GCS인터내셔널(밝은사회클럽 국제본부)은 20일 경기도 파주 문산행복센터 공연장에서 ‘2021 DMZ 평화대축제’를 열었다. 남북이 함께 국기(國技)로 삼은 태권도를 매개로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다.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준수하며 치러진 이번 행사는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됐다.
이날 행사가 열리기는 쉽지 않았다. 2019년 초대 행사는 남북 사이 철책선이 내다보이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국내외 태권도 수련자 약 1만명이 참석해 개최됐다. 그러나 코로나19 창궐 탓에 이번 행사까지 2년째 실내에서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열렸다. 그나마 올해는 지난해 행사에서 생략된 태권도 시범단 공연이 재개됐다.
최근 남북 관계는 움츠러들어 있다. 더욱이 북한이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다음 달 열리는 도쿄올림픽 불참을 선언한 탓에 돌파구가 돼야 할 스포츠 교류마저 막혔다. 조정원 GCS인터내셔널 총재는 “초대 행사 당시만 해도 수많은 사람이 DMZ 앞에 모여 전 세계에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임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규모를 줄이다 보니 ‘대축제’라는 용어를 쓰기가 부끄럽다”며 아쉬워했다.
시기적으로 올해 행사는 의미가 있다. 올해는 유엔 세계 평화의날 제정 40주년이자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데뷔 20주년이다. 세계 평화의날 제정 당시 직접 기여한 고 조정식 박사의 아들인 조 총재는 당시 부친과 함께한 일화를 회상하며 “닫힌 남북 관계에서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태권도다. 남북 관계를 풀어나갈 단초를 태권도가 제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진행된 DMZ 평화대축제 그림공모전 시상식에선 평화를 주제로 2개월간 공모한 작품 가운데 수상작이 선정됐다. 이들 수상작은 오는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조성될 6·25 참전 미군 용사 기념비 건립식 현장에 전시된다.
행사의 마무리이자 하이라이트는 중학생 20명으로 구성된 GCS글로벌평화봉사단 ‘태어로즈 영웅단’과 세계태권도연맹(WT) 시범단이 연이어 맡았다. 태어로즈 영웅단은 록과 트로트 등 다양한 음악에 맞춰 경쾌한 태권도 군무와 격파 시범을, WT 시범단은 눈을 가린 채 공중 발차기로 격파하는 등 고난도 시범을 선보였다. WT 시범단은 오는 8월 열리는 미국 NBC 방송 ‘아메리카 갓 탤런트’ 준준결승 무대에 진출했다.
윤군과 함께 이날 태어로즈 영웅단 시범에서 군무를 맡은 최은진(15) 신지은(14)양은 “각자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주말마다 시간을 내 언니 오빠들 없이 열심히 연습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범 공연을 처음 해보는 친구들도 많아 연습이 쉽지 않았다”면서 “무대에 서니 떨렸지만 그래도 열심히 한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며 기뻐했다.
WT 시범단원인 콜롬비아 태권도 품새 부문 국가대표 다니엘라(24)씨는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단원들이 오랫동안 함께 이번 무대를 준비했다”고 했다. 같은 무대에 선 WT 시범단원 유준영(20)씨는 “오늘 시범을 무사히 멋지게 치러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고 웃으며 “8월의 아메리카 갓 탤런트 무대를 잘 준비해 좋은 결과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파주=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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