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 걱정말고 공부하면 꿈 이뤄질 것”

입력 2021-06-22 03:05
유연수 수영교회 목사가 지난달 27일 부산 영도구 바울교회가 운영 중인 아동센터를 방문해 탈북민 자녀인 대준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연수 부산 수영교회 목사가 대준(가명·14)이가 있는 아동센터를 찾은 건 낮 기온이 24도까지 오른 지난달 27일이었다. 말이 센터지 대준이가 사는 곳은 부산 영도 산복도로 근처에 위치한 낡은 가정집이었다.

유 목사가 대준이의 이름을 불렀다. 막 학교에서 돌아온 대준이가 쭈뼛거리며 모습을 나타냈다. 유 목사는 그런 대준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곤 웃으면서 “목사님이 너 만나러 왔다”며 대준이의 어깨를 감쌌다. 유 목사와 대준이는 국제구호개발기구 한국월드비전을 통해 이날 처음 만났다. 그러나 유 목사는 전혀 어색함 없이 대준이를 대했다.

대준이는 탈북민 자녀다. 대준이 아버지는 16년 전 탈북했다. 한국에서 대준이의 엄마를 만나 결혼, 대준이와 대준이 여동생을 낳았다. 그러나 대준이 부모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준이가 네 살 때 이혼했다. 대준이와 여동생은 고아원에 맡겨졌다. 일주일 뒤 어머니가 고아원에 왔지만 여동생만 데리고 갔다. 이때의 충격으로 대준인 한동안 애정결핍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었다. 없던 아토피도 생겼다.

대준이를 고아원에서 데리고 나온 이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A씨였다. A씨는 대준이 아버지와 함께 탈북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대준이는 자신을 아껴주는 A씨를 친할머니처럼 따랐다. 그러나 A씨 역시 대준이와 함께 살기엔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았다. A씨는 그간 모은 돈으로 대준이와 함께 독일 이민을 갔으나 이민사기를 당해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 뒤로 대준인 여러 시설을 전전했다. A씨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대준일 돌볼 수가 없었다. 대준이 혼자 두고 일을 나갔다가 화재가 난 적도 있어 시설에 보내지 않고는 불안했다. A씨는 몸은 떨어져 있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물심양면으로 대준이를 돕고 있다.

대준이가 지금 있는 곳으로 온 건 2019년 초였다. 여긴 인근 바울교회가 운영하는 아동센터로 현재 23명의 청소년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다행히 대준인 잘 적응했다. 많은 가족이 생겼다며 조금씩 웃음도 되찾았다. 유 목사는 대준이를 보며 “그간 겪은 얘길 듣고 걱정했는데, 오늘 와서 보니 표정이 좋다”며 “잘 극복하고 있는 것 같아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탈북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았다.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부산 대표를 맡으면서 수많은 탈북 청소년을 만났던 그였다. 이런 경험을 떠나서 유 목사는 왠지 대준이가 낯설지 않았다.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유 목사는 대준이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날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얘길 꺼냈다. 그는 “내가 고 1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당시 막내가 다섯 살 때였다”며 “그때부터 집안이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흘렸다”고 했다. 유 목사는 “아버지가 약방을 하셨지만 나도 돈을 벌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아버지가 새장가를 가면서 새어머니로부터 설움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방황하던 유 목사를 잡아준 건 당시 유 목사가 다니던 거창고의 전영창 교장이었다. 유 목사는 “교장 선생님이 한 번은 부르더니 네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라며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하셨다”며 “꿈꾸는 게 사치라 느껴질 때 교장선생님은 내게 꿈을 꾸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의 핸디캡이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셨다”고 덧붙였다.

유 목사는 그 말이 너무나 큰 힘이 됐다고, 하나님의 위로 같았다고 했다. 유 목사는 “사실 유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멋모르고 기독교 학교인 거창고에 진학한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거기서 하나님을 믿게 됐으니 더 그렇다”며 “그 시절 너무 힘들어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주께서 날 위해 기도하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그는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 믿음 가운데 길이 있었다”고 전했다. 유 목사는 그 시절 불렀던 ‘주 나를 박대 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찬송을 지금도 즐겨 부른다고 했다.

유 목사의 말에 대준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뭔가 공감대가 형성된 듯한 느낌이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대준이 역시 예수를 믿고서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 대준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나갔던 시편암송대회에서 믿음의 싹을 틔웠다. 말씀을 외우는 것만으로 힘이 솟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 대회에서 3등을 한 대준이는 잔뜩 움츠렸던 마음이 펴지는 걸 느꼈다고 했다.

유 목사는 대중가요긴 하지만 참 좋아하는 가사가 있다며 ‘걱정 말아요. 그대’의 후렴구를 불렀다. 유 목사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 거름이 된다”며 “우린 하나의 과정을 살고 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쓰실 것”이라고 격려했다. 유 목사는 직접 준비해간 선물과 상품권을 대준이에게 전달했다.

대준이에게 이날의 만남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대준이는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이어 “하나님께서 내게 갖고 계신 계획이 뭘까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며 “지금 내가 공부를 하는 것도 어떤 직업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목사님께 거창고 교장선생님이 계셨듯 제게도 그런 선생님이 생긴 것 같아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부산=글·사진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