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응답… “낙심하지 말라”

입력 2021-06-21 03:05
최상훈 서울 화양감리교회 목사가 2019년 7월 케냐 올레키문크 감리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케냐 공항에 내려서 시내로 이동하려면 ‘마타투’라고 불리는 승합차를 타야 한다. 이 승합차의 대부분은 ‘용인태권도’ ‘OO카센타’ 등 한글이 쓰여 있다. 그런데 글씨 일부는 떨어져 나가고 일부는 지저분하게 붙어 있다.

“저 글씨 떼면 깨끗하고 좋을 텐데 왜 계속 붙이고 다녀요.” “외국어가 붙어 있어야 중고차 가치도 올라갑니다. 은근히 자랑하려고 하는 거지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됐다. 예전에 우리나라도 영어가 쓰여 있으면 더 좋아 보였던 시대가 있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 드러내고 싶다. 예수의 이름은 당연히 내 평생에 가장 자랑스럽고 의미 있는 이름이다. 별거 아닌듯한 생활의 진리 속에서 평생에 예수님만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1999년 우간다에서 선교를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케냐와 우간다 국경지대인 부시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노숙자 쉼터를 겸한 교회건축을 시작한 것이다. 현지 장애인 단체의 도움으로 장애인지원센터도 설립하게 됐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상 첫 번째 우간다교회 건축 프로젝트였다. 건축비는 서울 예광감리교회에서 일부 지원했고 공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건축이 결코 쉽지 않았다. 케냐는 부족 언어만 50개가 넘었다. 소통에 어려움이 컸다. 건축업자 중에는 자재값을 바가지를 씌워 받는 사람도 있었다. 공사 감독마저도 중간에 자재값을 착복하곤 했다.

결국 예상보다 공사 기간이 대폭 늘어났다. 재정도 훨씬 더 많이 들어가게 됐다. 하루하루 스트레스와 중압감이 말이 아니었다. 선교사이기에 말도 못하고 참고 견뎌야 하는 어려움이 컸다. 두통에 시달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밤을 새워 기도했다. 금식기도도 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다. “주님, 우간다 땅에 교회건축을 하는데 도와주세요. 좋은 사람도 만나서 재정의 문이 열리게 해주세요. 건축이 중단되지 않게 해주세요.”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던 그때 오히려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다. 수술비가 모자라 수술을 받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현지인 가정을 만난 것이다. 건축에 도움을 줄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내가 도와줘야 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딱한 사정을 들으니 참 난감했다.

건축비도 부족하고 선교비도 바닥난 상황이었다. 남은 건 생활비뿐이었다. 그러나 잠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누가복음 6장 38절 말씀을 주셨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하나님은 계속해서 마음에 감동을 주셨다. 그때 갖고 있던 생활비 대부분을 전했다. 우리 부부에겐 정말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변한 것이 있었다. 그때부터 진심으로 간절한 기도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냥 도와주셨으면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말 주님 아니면 방법이 없습니다”를 부르짖으며 예수님을 온전히 의지했다.

하나님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도 부족한 건축비는 채워지지 않았다. 공사는 결국 중단됐다. 생활도 점점 어려워졌다. 중단된 공사현장, 생활비가 부족한 가계상황을 보니 가슴 속에서 울컥하는 것이 올라왔다.

어느 날 아내와 동네시장에 가는데, 아내가 잠시 길을 멈췄다. 그리고 현지인들이 흙바닥에 깔아놓고 파는 중고 티셔츠 2벌을 샀다. 쭈그리고 앉아서 흙 묻은 옷을 뒤지는 아내의 뒷모습을 봤다. 눈물이 났다.

그렇게 계속 기도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다른 선교사님께 빌려달라고 할까. 매달 조금씩 갚아나가면 되지 않을까.’ 한국에서 누군가가 선교비를 보내주는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현장에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갑자기 케냐 현지 케냐감리교회 감독회장이 생각이 났다.

비서를 통해 약속을 잡았다. 케냐지역을 대표하는 단부리 감독회장을 만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선교사가 현지 교회 감독을 찾아가면 유용한 곳에 사용하라며 선교비를 헌금하는 것이 관례였다.

단부리 감독회장과 담소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건축 이야기가 나왔다. 건축이 중단된 상황에서 한국에서 후원이 필요하니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감독회장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얼마가 부족합니까.” “1만 달러 정도가 부족합니다.” “제가 주겠습니다.” “예?” 당시 선교사 사회에서 피선교지 지도자에게 교회건축 명목으로 후원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도 응답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때가 훨씬 많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최상훈 목사(서울 화양감리교회)